"아 맞다. 셧다운 당하는데, 헐."
지난 2012년 프랑스의 프로게임대회 '아이언스퀴드'에 참가했던 프로게이머 이승현(당시 15세) 군은 경기 도중 이런 말을 남기고 게임을 포기해야 했다.
국제 대회인 만큼 한국 시간으로는 밤에 경기를 치러야 했는데, 마침 경기 도중에 자정이 다가와 '강제적 셧다운제'에 따라 게임 서버에서 접속이 끊기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를 인터넷으로 중계하던 외국인 캐스터는 "뭔가가 셧다운 됐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 했다.
이 때문에 만 16세 미만 청소년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게임 이용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도록 하는 청소년인터넷게임건전이용제도(일명 '강제적 셧다운제')가 지나치게 무분별하게 적용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앞서 일부 학부모는 자녀의 게임 이용 시간은 학부모가 교육 철학에 따라 정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국가가 나서서 무차별적으로 셧다운제를 적용한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학부모가 자녀의 학습 시간과 수면 시간 등을 고려해 심야 시간에 게임 이용을 허락하더라도 셧다운제 때문에 게임을 할 수 없어 학부모의 양육권과 교육권 등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결국 올해 4월 헌법재판소가 이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일단락됐지만 업계와 일부 학부모는 헌재 결정에 비판적이었다.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도 게임시간선택제(일명 '선택적 셧다운제')를 내놓으면서 이중규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게임업계 내에서도 게임 산업 자체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해외 수출 등이 어려워진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게임의 지적재산권 수입이 연 8천억 원에 달해 다른 한류 콘텐츠 전체의 5.7배나 되는데도 정작 국내에서는 게임 산업을 백안시한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불만이었다.
여기에 정치권에서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다른 법안이 발의되면서 셧다운제를 포함해 정부의 게임 규제와 게임산업 홀대에 대한 게임업계의 불만은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이렇듯 논란을 빚은 셧다운제가 결국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는 수순을 밟게 됐다.
여가부와 문체부가 강제적 셧다운제와 게임시간선택제(선택적 셧다운제)를 일원화해 학부모가 원하면 강제적 셧다운제도 적용을 해제할 수 있는 '부모선택제' 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게임 때문에 우리의 청소년이 죽어가고 있는데 규제 완화가 무슨 말이냐' 하며 강제적 셧다운제의 정당성을 강조했던 여성가족부가 이처럼 전향적인 정책을 내놓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게임 산업의 합리적 규제를 주문했기 때문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서 "콘텐츠 산업의 60%를 차지하는 게임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이 큰 산업"이라며 "규제를 하는 데 있어서 한쪽만 바라보고 규제를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업체가 손상을 받게 되는 예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시 박 대통령은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합리적인 규제가 나오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하고 "게임업계도 부작용이 없도록 같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지난 4월 헌재가 이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부터 내부적으로 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었다"면서 "게임 이용에 대한 성숙도가 높아진 만큼 잘 정착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올해 안으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회 논의와 예고 기간 등을 거치면 내년 하반기께부터 실제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 옛 게임산업협회)의 서형교 정책홍보실장은 이번 규제 완화 방안에 대해 "양 부처가 규제 완화와 개선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규제 개선을 위한 상설협의체 신설을 밝힌 만큼 이를 통해 더 많은 규제가 점진적·단계적으로 개선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이어 "게입 기업들도 게임의 역기능 해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게임업계 일각은 아직 이번 개선안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실제 학부모가 나서서 강제적 셧다운제 적용을 해제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며 "실효성이 크지 않아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개선안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