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설악산 케이블카 예정노선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산양 (사진=녹색연합)
“산양이 새끼를 데리고 가는 것도 카메라에 찍힌 것을 보면 그곳은 번식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위원회의 한 민간위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전문가들의 판단은 현재 나와 있는 자료로는 (산양의) 주요 서식지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범대위 측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내용도 있으니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환경성 등의 검토를 맡았던 민간전문위원장도 고심을 토로했다.
이런저런 의견이 오가던 중 다른 민간위원도 우려를 나타냈다. “산양문제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이 신경이 쓰입니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기보다는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논의가 길어질 낌새가 보이자 정부 측 위원이 나섰다. “산양과 관련해서는 민간전문위원회가 어느 정도 잠정의견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국립공원위원회의 지난달 28일 회의록 일부가 공개됐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안이 조건부 가결된 바로 그날의 회의록이다.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환경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환경부 제공)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은 정부위원으로 참석한 환경부 A 국장을 불러 세웠다. “(‘산양과 관련해서는...잠정의견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은) 누가 한 말입니까?” “익명으로 처리된 것이라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A 국장이 답변이 이어졌다.
우 의원이 다그쳤다. “익명처리를 한다고 가렸지만 사실 이름이 다 보입니다. (민간전문)위원장이 고민해보자고 이야기 하는데 국장이 논란을 끝내고 있어요.” “논란을 끝내는 그런 맥락으로 발언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의견 중에 하나였을 뿐입니다...” A 국장의 반박이 이어졌다.
설악산 케이블카의 운명이 결정된 바로 그날의 회의록은 이렇게 드러났다. 야당이 공개한 회의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날 정부 위원들의 의견은 한결 같았다. 환경부 소속 위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국장의 문제의 발언 직후,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장도 “그간 시간이 많이 지연됐으므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위원들을 채근했다.
환경부 소속 위원은 이날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한 경제성 분석에서 환경성 분석이 빠진 것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줄곧 방어하는 편에 서 있었다.
지난달 2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환경부 제공)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기재부나 국토부, 문체부 등에서 나온 정부위원들이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해 찬성입장을 내놓는 것은 해당 부처의 입장을 감안할 때 그나마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환경부 소속 위원이 ‘디펜스’에 나섰다는 사실은 실망을 금치 못하게 했다.
3년 가까이 환경부를 출입하면서 자연을 지키기 위해 개발 정책에 맞섰던 투쟁의 기억을 훈장처럼 여기고 사는 공무원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은 ‘사사건건 발목만 잡는다’는 다른 부처의 비아냥도 아랑곳없이 마구잡이 개발에는 분연히 맞섰고, 그렇게 환경부의 위상을 세워왔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들은 어디에도 우군이 없는 외로운 부처지만, 말 못하는데다 투표권도 없는 자연과 미래세대를 위해 일하는 유일한 부처라고 자부했다. 기자도 그런 곳이 환경부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환경부가 이번에 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자문을 해주고 살뜰히 일정을 챙겼고, 그것도 모자라 국립공원위원회에서조차 찬성 쪽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0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윤성규 장관과 간부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환경부 제공)
환경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이렇게 항변했다. “우리가 달나라 공무원인가.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의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공무원이다. 그것이 싫으면 공무원을 그만둬야 한다.” 설령 자신의 소신과 다르더라도 공무원은 행정부 수반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은 합법적 절차에 따라 행정을 해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라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에 위배될 경우에는 그것을 집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 공무원의 책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공무원의 신분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