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첫 번째 대국에서 첫 수를 두고 있다. 이 9단의 첫 수는 우상귀 소목, 알파고는 1분 30초의 장고 끝에 좌상귀 화점에 첫 수를 뒀다. (사진=구글 제공)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 1국이 알파고의 '불계승(不計勝)'으로 끝났다.
알파고와의 3시간 반 치열한 접전 끝에 이세돌 9단이 돌을 던진 것이다.
대국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전한 프로 바둑기사들에게 이들의 승부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 흔들림 없는 알파고…이세돌 패인은 '정보 부족'과 '방심'바둑 TV에서 해설을 맡았던 김효정 9단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 역시 중반부 알파고의 '악수(惡手)'로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자신했었다.
김효정 9단은 "지금 너무 충격을 받았다"면서 "알파고가 악수를 두는 순간에 다들 낚였다. 그 이전에 이세돌 9단이 좋지 않았는데 기세가 좋아졌다. 알파고가 너무 어이없는 실수를 했고, 분위기에 휩쓸려 다들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집을 세는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해설을 맡은 프로 기사들은 점차 말이 없어졌다. 이미 끝내기가 들어간 상황. 어떻게 해도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길 방도가 없었다.
분명 알파고가 불리한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 알파고는 초조해하지도 않고 '최선의 수'만을 찾아갔다. 프로 기사들의 말에 따르면 이기고 있을 때도 '방심'이 없다. 기계에게 기풍이 있다면 알파고는 '흔들림 없는 냉정함'이다.
김효정 9단은 "분명 실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알파고는 냉정하게 다음 수를 찾는다. 흔들림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이상한 수를 많이 두기는 했는데 전체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국을 지켜 본 홍민표 9단은 알파고의 바둑을 '인간과 운영의 눈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홍민표 9단은 이번 대국에서 알파고가 보여준 실력에 대해 "대국을 시작했을 때 창의적인 수를 뒀고, 강함이 느껴졌다. 이후 잠시 컴퓨터의 한계인가 싶은 시점이 있었지만 뒤집는 힘이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알파고가 중반부에 둔 '악수'조차 설계의 일부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홍민표 9단은 이에 '반신반의'했다.
그는 "부분적으로는 실수가 맞았다. 우리들 직관에서 봤을 때는 분명히 이상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결과는 그렇지도 않았다. 설계였을 가능성도 있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이세돌 9단의 '패인'은 무엇일까. 김효정 9단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 실력을 모른 점, 홍민표 9단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방심'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김효정 9단은 "평상시 본인이 바둑을 두는 대상으로 생각해서 변화를 보이면서 시도를 했는데 제 느낌에는 이세돌 9단도 당황했다"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지르고 들어오는 수가 있어서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너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홍민표 9단은 "방심이 컸다. 이세돌 9단이 실험적인 수를 들고 나왔는데 제한시간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으면서 빠르게 수를 뒀다"면서 "중반에 기세를 잡았을 때 좀 더 신중했어야 되는데 이후 우측하단에 있는 집을 많이 빼앗기는 실수를 했다. 그렇게 역전을 당한 것도 컸다"고 지적했다.
◇ 1국은 맛보기, 2국부터가 진짜…바둑계 분위기는?두 사람은 이어지는 2국이 승패 분위기를 결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1국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모두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는데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홍민표 9단은 "2국에서는 이세돌 9단이 절대 방심하지 않고 대국에 임할텐데 만약 패하면 알파고가 5:0으로 이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승리하면 자신감이 붙어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가리라 본다"고 예상했다.
김효정 9단은 도저히 예상 스코어를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도 "이제 이세돌 9단이 직접 알파고를 겪어봤으니까 달라질 것이다. 물론 알파고의 모든 수를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본인이 어떤 느낌으로, 어떤 스타일로 알파고를 대해야 하는지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인간만의 영역으로 취급됐던 바둑에 인공지능이 도전했고, 승리를 거뒀다. 바둑계에 몸 담고 있는 두 프로 기사들은 이에 대해 정반대의 전망을 내놨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지속적으로 발달한다면 바둑의 교육 체계와 시스템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홍민표 9단은 "인공지능에게 교육 받는 것이 더 좋은 효과가 있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 바둑 체계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바둑 기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걱정이 된다. 바둑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에는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