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알 수 없는 영감과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이 어머니에게 문안인사를 와서 엎드려 절한 뒤 “아주 강건해 보이십니다, 어르신” 하고 말했을 때, 그때가 마침 이른봄이었는데, 어머니는 그의 두 손을 모아 잡아 어루만지며 말했었다.
“요즘은 마른나무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라우.”(20쪽)
소설가 한승원이 또 한 권의 장편소설 '달개비꽃 엄마'를 펴냈다. 백 세를 앞두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질긴 생명력과 사랑을 그렸다. 한승원은 그간 고향인 전남 장흥을 중심으로 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끈질기게 추적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닌 한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자들만이 남길 수 있는 위대한 발자취임을 증명하는 데 천착해왔다. 이러한 작가의 오랜 집념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오롯이 그려낸 이 소설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십일 남매를 온전히 키워내는 일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바쳤지만, 그것조차 시대의 저항에 막혀 버거워했던 어머니의 삶을 절절하고 생명력 있는 언어들로 담아냈다.
“오냐, 오냐, 니 쓰라린 속, 이 어메가 다 안다, 내가 다 안다.
울어야 풀리겄으면 얼마든지 실컷 울어버려라.”
섬 처녀인 점옹은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다부진 성격으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줄곧 “우리 일등짜리”란 말을 듣는다. 특히 여성들이 교육받을 기회가 몹시 적었던 당시로서는 드물게 학교에 다니며, 학생들을 대표해 학교를 홍보하는 연설까지 할 정도로 당찬 인물이다. 게다가 재취 자리라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선생이자 ‘아담’ 같은 숙명의 상대인 한웅기와 결혼한다. 그 사이에서 십일 남매를 낳지만 그들의 삶은 점옹처럼 당차거나 다부진 것이 되지 못한다. 유일하게 둘째 아들인 ‘승원’만이 “우리 집안의 기둥”이 되어 형제들을 건사해가며 삶을 꾸려간다. 승원의 삶 역시 소설을 발표해 받는 쥐꼬리만한 원고료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버는 박봉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것이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하늘 저울’이 되어 승원을 지켜낸다. 특히 문학에 큰 뜻을 둔 승원이 서울로 공부하러 가는 문제를 두고 아버지인 웅기와 어머니인 점옹이 대립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학교 선생을 하며 진보적인 생각을 하던 웅기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수적인 노인의 모습이 되어 승원의 책을 모두 찢어발길 정도로 승원의 서울행을 반대한다. 그러나 점옹은 끝까지 승원의 편에 서서 승원을 웅변한다.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을 갈고닦아야 장래가 환히 트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옹의 진보적인 생각은 “조선이란 나라는 제사만 지내다가 망했다”면서 여러 조상님들의 제사를 한날로 잡아 지낸 것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점옹과 웅기의 갈등은 승원을 절망하게 만들고, 때마침 사귀던 여학생에게도 절교를 당하면서 승원은 절망을 넘어 분노에 이르게 되는데……
작가 자신이 동명의 등장인물로 분한 이 소설은 어머니에 대한 ‘깊이 읽기’인 동시에 한승원 자신의 삶과 문학 인생을 반추하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소설쓰기에 매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학생들을 가르치고, 형제들을 훌륭하게 건사해내며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완성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지만 ‘소설’ 때문이었다.
지난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소설이란 삶의 동아줄을 굳게 붙잡게 해준 구원 같은 존재가 바로 어머니였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처자식과 동생들에게는 보일 수 없었던 깊고 고단한 울음도 어머니의 품안에서만큼은 마음껏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이야기가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고故 이청준 선생과 어머니의 일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가 이청준 선생의 손을 어루만지며 “요즘은 마른나무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며 이른봄의 생명력이 자신과 멀지 않음을 선연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성실하고 건강하게 한 생을 살아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감과 직관, 그리고 삶의 지혜…… 우리는 그것을 어머니의 뒷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 속으로
우리 집안에서는 진보적인 생각을 하곤 하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모든 제사를 합동으로 지냈다. 어머니는 조선이란 나라는 제사만 지내다가 망했다면서, 여러 조상님들의 제사를 어느 한날을 잡아 한꺼번에 한사코 조촐하게 지내라고 명했다. 그것을 제일로 반긴 것은 종손인 형과 형수였다.(25∼26쪽)
나는 곡식 자루 위에 책가방을 얹어 짊어지고 반찬단지를 들고 아버지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하고, 팔십 리를 걸어서 장흥 읍내의 자취방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가다 쉬고 또 가다 쉬기를 거듭하면서 싸묵싸묵 걸었다. 그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의 강행군으로 인해 사흘 동안 다리 몸살을 앓곤 하면서도 나는 일주일에 한 차례씩 아니면 이 주일에 한 차례씩 어머니를 보러 왕래하곤 했었다. 열세 살, 열네 살, 열다섯 살의 소년을 그렇게 강행군하게 한 그것은 대관절 무엇이었을까.(39∼40쪽)
다른 형제들은 소리내어 울지 않고, 다만 흐르는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 새로이 시집가신다” 하고 말하고 나서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어헉어헉 하고 소리내어 울었다. 살아오면서 늘 어머니의 광활한 품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곤 한, 여든을 눈앞에 둔 늙은 아들인 나 혼자만 어른답지 못하게 소리내어 운 것이었다. 나는 왜 철없는 아이처럼 그렇게 울었을까.(203쪽)
“오냐, 오냐, 니 쓰라린 속, 이 어메가 다 안다, 내가 다 안다. 울어야 풀리겄으면 얼마든지 실컷 울어버려라.”(216쪽)
죽으면 혼령이 있을까. 극락이나 천국은 있는 것일까. 그것들은 모두 허상이고, 세상은 덧없기만 한 것일까. 한 개의 파도가 모래톱에서 재주를 넘으며 부서지면, 뒤따라 달려온 파도가 그 부서진 자리에서 다시 부서졌다. 늙을 줄도, 죽을 줄도 모르고 영원을 사는 신의 또다른 모습인 바다 앞에서 유한한 생명체인 나는 어머니의 시간을 생각했다.(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