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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지하실 남자 박명훈, "대본 보고 충격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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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지하실 남자 박명훈, "대본 보고 충격의 도가니"

    [노컷 인터뷰] 영화 '기생충' 근세 역 박명훈 ①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생충' 근세 역 배우 박명훈을 만났다. (사진=딥 포커스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고 기사 읽기를 권장합니다.

    "솔직히 이 순간을 기다려왔고요. 또 댓글로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약간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꿈 같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뭐 되게 여러 가지 감정이 좋은 느낌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중반부터 힘 있게 등장해서 관객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근세 역을 맡은 배우 박명훈은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였다. 박사장(이선균 분)네 지하에 비밀 공간이 있는 것, 입주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 분)이 사업 실패로 쫓기는 남편 근세를 거기서 살게 하는 것 모두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명훈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제작보고회, 언론 시사회는 물론 황금종려상을 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도 공식적으로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다. 1년 2개월 동안 SNS도 끊었다. '기생충'에 근세라는 인물이 나오고, 그걸 박명훈이 연기한다는 정보는 영화 개봉 2주차에야 포털 사이트에 게시됐다.

    단, 영화는 5번 봤다. 파주 명필름아트센터에서 배우 중 가장 먼저 한 번, 다른 배우들과 함께한 기술 시사 때 한 번,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 번, 개봉 전 VIP 시사회에서 한 번, 개봉 날 조조로 한 번 본 결과다.

    박명훈은 영화 개봉 13일째였던 지난 11일에야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CBS노컷뉴스는 그보다 하루 뒤인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명훈을 만났다.

    ◇ 영화 '재꽃' 본 봉준호 감독, '기생충'을 제안하다

    박명훈은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 작품에 처음 출연하게 됐다. 지난 2017년 개봉한 '재꽃'에서 박명훈을 인상적으로 본 봉 감독은, 박명훈 연기에 관해 오디오 코멘터리를 남기고 관객과의 대화 모더레이터를 맡기까지 했다.

    박명훈은 "감독님도 '옥자' 개봉하고 극장에서 (상영)할 때라 바쁘실 텐데, 저희 영화 보시고 모더레이터 2시간 해 주시고 오디오 코멘터리로 저 술 취한 연기며 그런 걸 극찬해주셔서 놀라웠다"고 기억했다.

    그 후로 7~8개월이 흐를 때까지 전혀 만나지 못하다가, '기생충' 미팅으로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는 게 박명훈의 설명이다. 사전에 어떤 언질도 듣지 못했다고.

    '기생충' 시나리오를 볼 때는 더 놀랐다. 박명훈은 대본을 택배로 받아 몰래 커피숍에 가서 읽었는데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 이런 시나리오를 본 적이 없다. 정말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박명훈과 봉준호 감독의 인연은 영화 '재꽃'이 개봉한 2017년으로 올라간다. 봉 감독은 당시 '재꽃' 관객과의 대화 모더레이터를 맡기도 했다. 왼쪽부터 박명훈, 봉준호 감독 (사진=박명훈 인스타그램)

     

    그는 "시나리오의 꼼꼼함이라든지 반전이라든지 첫 장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거의 충격의 도가니였다. 보통은 배우의 습성으로 (시나리오에서) 본인의 역할을 찾게 되는데 내가 언제 나올까 그게 궁금한 게 아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놀랄 만한 시나리오다! 근데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이거야? 하는 두 번째 충격이 있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어떻게 해석했냐고 묻자, 박명훈은 "이 세상에는 충분히 영화보다 더 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영화 속) 일들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어떤 메시지를 줘야겠다, 하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박명훈은 "정말 믿기지 않지만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며 "보시는 분들이 너무 다양한 해석을 하셔서 각자 해석하시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 촬영 들어가기 전 지하실에서 머물러봤더니…

    근세라는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갔을까. 봉 감독은 인물을 규정하지 않고 시작했고, 박명훈과 의견을 나누며 다듬었다. 대만 카스테라 같은 자영업을 하다가 사채를 쓰지 않았을까, 과연 대만 카스테라가 첫 사업이었을까 마지막 사업이었을까, 자영업을 하기 전 일반 직장에 다니지 않았을까 등 다양한 상상을 했다.

    박명훈은 "근세는 선하고 평범한 인물이니까 일반 회사에서도 일찍 나와서 퇴직금을 받았을 것 같다. 인물에 대한 전사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덧붙였다.

    영화 안에서 근세는 뜻밖의 인물이기에 무섭고 기이하지만, 정작 박명훈은 거기에 초점을 두고 연기하진 않았다. 그러면 "전형적인 기이함과 그로테스크함만 나왔을 것 같아서"가 그 이유다. 근세를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건, 오랫동안 지하실에 갇혀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박사장네 지하실에서 4년 3개월 17일 동안 산 설정인 근세를 연기하기 위해, 박명훈은 본인 촬영이 시작되기 전 전주 세트장에 마련된 지하 공간에 먼저 가 봤다.

    "사람이 그 어두운 공간에 있으면… 햇빛에 대해서 얘기하셨지만 몽롱해지고 되게 어눌한 느낌이랄까, 눈 초점도 굉장히 이상해지고 비타민 D를 못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웃음) 사람이 굉장히 희한해지더라고요. 공간이 주는 그 상황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주인집 없을 때 문광과 차 마시고 춤추는 장면도 있지만 주로 거기 갇혀있기 때문에… 근세 대사에도 있듯이, 물론 여기 처음 들어올 땐 나갈 생각이 있었지만 사람이 굉장히 안주하게 되는 느낌? 그런 느낌들이 있을 것 같더라고요."

    박명훈이 맡은 근세는 이렇게 거대한 저택의 지하 비밀 공간에서 사는 인물이었다. (사진=㈜바른손E&A 제공)

     

    근세는 모스 부호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봉 감독이 모스 부호를 미리 습득하라고 해서 앱을 다운받아 공부했다. '감사' 이런 간단한 단어들은 할 수 있었는데, 촬영한 지 오래돼 이제는 많이 잊었다.

    박명훈은 "근세 책상에 수많은 책도 있고 존경하는 인물들(사진)도 많지 않나. 넋 놓고 멍 때리는 게 아니라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다. 고시 공부를 하는데 (밖에서는) 그 고시가 없어졌다는 슬픈 상상도 해 봤다"고 말했다.

    후반부 문광의 죽음 이후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변한 것에 대해서는 "기우(최우식 분)를 포획해서 돌로 내려치는 장면이라든지 기정(박소담 분)에게 행한 잔인한 폭행, 그런 건 전혀 근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자기 삶의 한 줄기 희망이었던 인물인 아내가 바로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봤기에, 그 후부터는 사실상 이성을 잃은 것으로 생각했다. 박명훈은 "그때부터 근세는 이성이 아니라 본능에 의한 동물적인 행동을 했으니, (그건) 근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 스태프들은 대박 조짐을 이미 눈치챘던 '리스펙!'

    하늘이 무너진 듯 세차게 비 내리던 날, 캠핑 간 박사장네 집을 제집처럼 쓴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 가정부로 일하다 쫓겨난 문광이 돌아오면서 극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문광의 등장은 곧 근세의 등장이기도 했다. 박명훈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공개하는 첫 등장 장면을 가장 공들였다고 밝혔다. 이 장면은 그의 첫 촬영 장면이었다.

    그는 "배우는 첫 등장이 굉장히 중요하다. 근데 제가 고민할 필요 없이 젖병이 있고 바나나가 있고, 저는 누워있으니까 보는 사람들이…"라며 웃었다. 이어, "감독님이 너무 훌륭하게 구현한 콘티가 있어서, 저는 그 상황에만 집중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가장 짠한 장면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과 문광이 박사장네서 쫓겨나는 장면을 들었다.

    박명훈은 "기생충이 연극이라면 1막은 기택 가족의 잠입이고 2막은 문광이 띵동 초인종을 누르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긴 시퀀스라고 생각한다. 그때가 전 제일… 먼가 헬게이트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한없이 떨어지면서 꺾고 꺾고 지하의 문이 딱 열렸을 때, 문광과 근세가 조우하는 거기까지가 보시는 분들도 다들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라고 바라봤다.

    배우 박명훈 (사진=엘아이엠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장 짠했던 장면은 바람이 거칠게 부는 날 쫓겨나는 문광 장면이었다. 박명훈은 "두 번째 보시면 더 이해가 될 것"이라며 "그 집 밖으로 나가면서 한 번씩 돌아보는데 굉장히 슬프더라. 근세를 두고 오는 그 여자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아플까 싶었다"고 전했다.

    자신을 먹여 살려주는 박사장에게 '리스펙!(존경한다는 뜻)을 외치는 근세의 모습은 기이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박명훈은 그 장면이 이 정도로 반응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현장 스태프들은 '이거 분명히 유행어가 될 것 같다'고 예측했다. '하나, 둘, 셋, 리스펙!'은 촬영 당시 구호이기도 했다.

    박명훈은 "박사장에 대한 리스펙트한 마음은 늘 갖게 되더라. 영화 외적으로도 박사장과 제가 동갑이어서 전주 맛집을 많이 다녔다. 항상 이선균 배우가 맛있는 걸 사줘서 제가 리스펙트 마음이 생기더라. 영화 속에서도 저절로 됐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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