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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이미 해결된 문제일까? 일본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국내 언론은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반영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청와대는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한 뒤 이듬해 '청구권 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 제5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의 일본에 대한 민간 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권 자금 중에서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조항을 근거로 정부는 1974년 '대일민간인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1엔당 30원으로 계산해 보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이 법률을 토대로 1975년부터 1977년까지 피징용 사망자 8552명에게 1인당 30만원씩 지급했고, 채권 등 증서에 대한 보상으로 7만4963건, 66억1695만원을 지급했다. 이렇게 지급된 금액이 모두 91억8252만원으로 한일청구권자금 중 무상자금 3억달러의 5.4%에 해당했다.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다시 부각된 것은 참여정부 때였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협상문서가 공개됐고 민관공동위원회가 이를 검토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민관공동위원회는 2005년 8월 26일 "한일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규정했다. 이어 강제동원에 대해서는 "한일협상 당시 일본정부가 강제동원의 법적 배상·보상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한국정부는 고통 받은 역사적 피해사실에 근거해 정치적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했으며 이런 요구가 양국간 무상자금 산정에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즉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는 개인재산권,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됐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민관공동위원회는 그러면서 "정부는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그러나 1975년 우리 정부의 보상 당시 강제동원 부상자를 보상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도의적 차원에서 볼 때 피해자 보상이 불충분했다고 볼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민관공동위원회는 2006년 3월 8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대책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민관공동위는 여기서 "정부의 법적 책임에 따른 것이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지원대책이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한 1975년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이 충분치 못했다는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피해자들의 오랜 고통을 위로하고자 하는 인도주의 원칙에 의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민관공동위는 '해방 이전 피징용 사망자'로 한정했던 보상 대상을 부상자와 행방불명자, 귀국선 침몰 등으로 인한 사망자, 미수금 피해 등으로 확대했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의 지원대책을 집행하기 위해 2007년 12월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에 대한 법률'을 입법했고, 이 법은 2010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 대체됐다.
특별법은 제1조에서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국가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인도적 차원의 위로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국민화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에게는 1인당 2000만원, 부상자에게는 장해 정도에 따라 최고 2000만원의 위로금, 생존자에게는 매년 80만원의 의료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를 통해 지급된 위로금과 지원금은 모두 6334억원이었다.
되돌아보면 박정희 정권이 강제동원 피해자 중 사망자에 한해 일부 보상한데 이어 참여정부가 위로금과 지원금 형식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한 셈인데 대법원이 2012년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면서 사태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들어선 것이다. 일본이 불법적인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협정의 틀 바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숙제를 던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