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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뉴스]소라넷의 후예 n번방 낳은 '침묵의 공범자들'



사회 일반

    [딥뉴스]소라넷의 후예 n번방 낳은 '침묵의 공범자들'

    [노컷딥이슈] 소라넷 폐쇄후 이어진 디지털 성범죄들
    사회는 여전한 '솜방망이' 처벌로 골든타임 놓쳐
    전문가 "여성들 요구 다시 묵살하면 또다른 n번방 양산"
    "디지털 성범죄 가볍지 않아…사각지대 없게 법망 정비"

    지난 2016년 폐쇄된 국내 최대 성인사이트 '소라넷'. (사진=자료사진)

     

    국내 최대 성인 사이트 소라넷이 개설 17년 만에 폐쇄된 건 2016년. 일년여 끈질기게 이어진 경찰 수사의 결과였다.

    소라넷은 그야말로 공개적인 성범죄의 온상이었다. 회원들은 강간을 모의하고 실행했으며, 성착취 촬영물이 공공연히 유포됐다.

    서버에 등록된 회원수는 무려 100만 명. 그렇게 소라넷이 공중분해된지 3년 동안, 성범죄 집단은 이동에 이동을 거듭해 텔레그램에 정착했다. 익명의 음지, 텔레그램 'n번방'에서는 한층 더 교묘하고 악랄한 수법으로 미성년자 및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었다.

    n번방 용의자 및 가입자 26만 명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숫자 440만은 이 사건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는지 시사한다. 그러나 사실 수법만 달라졌을 뿐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소라넷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소라넷이 위기를 맞은 사이 'AVSNOOP'(이하 AV스눕)이 제2의 소라넷으로 급부상했다. AV(Adult Video·성인 비디오)와 SNOOP(염탐꾼)의 합성어를 뜻하는 이 사이트는 회원수가 121만 명에 미성년자 촬영물을 포함, 게시된 음란물만 46만 건에 달했다. 소라넷이 사라지자 절정기를 맞았다가 결국 경찰의 적발로 2017년 폐쇄됐다.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 끝에 표면적으로 이들은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들은 쉽게 경찰에 노출되는 대형 커뮤니티에 집결하지 않고, 익명의 공간을 파고들어 산발적으로 조직화됐다.

    2018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성행했던 '빨간방'은 n번방의 시초나 다름없었다. 방에 번호가 매겨진 이곳에서는 '소라넷'과 'AV스눕'의 주류를 이뤘던 성착취 촬영물들이 공유됐다. 또 다시 신고가 들어가자 이들은 활동 무대를 보안이 철저한 텔레그램으로 옮겼다. 그리고 2019년 이곳에서 갓갓의 n번방, 이를 물려받은 와치맨·켈리, 마지막으로 이 같은 성범죄를 수익모델로 만든 박사방까지 탄생했다.

    단계를 거칠수록 범행은 대담해졌다. n번방 운영진들과 회원들은 보란듯이 성범죄를 직접 기획·실행·가담·동조하며 협박에 취약한 미성년자와 젊은 여성 대상으로 강간, 성착취, 성적 학대 등을 일삼았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24일 CBS노컷뉴스에 "이전에 웹하드라는 합법 사업자들이 성착취 촬영물로 수익을 냈다면 이제 불법적인 개인이 성범죄를 저지르며 수익을 내는 방식"이라고 디지털 성범죄 진화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디지털 성범죄가 파편화, 개별화되면서 불특정다수의 여성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딥페이크'(얼굴합성)를 통한 지인 '능욕'부터 n번방까지 광범위하고 예측불가능한 성범죄 피해자가 되고 있다. 더 이상 온라인 공간도 여성들에게는 안전하지 않게 돼버렸다"라고 지적했다.

    서지현 검사가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침묵으로 '동조'한 사회…골든타임 되돌릴 방법은?

    이쯤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이들은 대형 성인 사이트들의 폐쇄 사례를 목도하고도 겁 없이 디지털 집단 성범죄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 답은 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서 찾을 수 있다.

    경찰이 수사력을 총동원해 미국·유럽 경찰까지 공조수사를 벌여 잡힌 소라넷 운영자는 징역 4년 판결에 그쳤다. 1심이 내린 14억1천만원의 추징금 선고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운영진 6명 중 3명은 여전히 신병 확보를 못한 상태다.

    2018년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갑질 사건'은 성착취 촬영물로 이득을 챙긴 웹하드 카르텔을 세상에 드러냈다. 당시에도 촬영물 소지자·구매자에 대한 처벌 요구가 빗발쳤으나 법안 개정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2019년 연예계를 뒤흔든 '버닝썬 게이트'는 남성 연예인들의 불법 성매매와 성범죄 실태를 폭로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주범인 정준영과 최종훈은 집단 성폭행으로 '특수준강간' 혐의가 적용·인정됐음에도 각기 징역 6년과 5년을 선고 받았다. 두차례 구속영장을 피한 승리는 유유히 군에 입대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다크웹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한 손모씨도, 제2의 소라넷 'AV스눕'을 운영한 안모씨도 징역 1년6개월 선고가 전부였다.

    n번방 이전 디지털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근절할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 정부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동안, 무고한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더 잔혹한 수법의 가해자들이 발생했다.

    여성·아동·청소년 사회단체 탁틴내일의 이현숙 상임대표는 24일 CBS노컷뉴스에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학습효과가 분명히 있다. 텔레그램 범죄가 과감해질 수 있었던 이유도 군중심리와 '절대 걸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역시 "성착취가 텔레그램에 한정해서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이들 집단은 플랫폼만 이동하면서 그 수법이 발전해왔다. 이제 텔레그램이 무력화됐으니 또 강경한 대안 없는 미약한 처벌로 끝나면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해 온 사회가 오히려 범죄자들에게 묵인과 허락의 '시그널'을 보내며 '동조'한 모양새가 된 셈이다. 그 과정에서 더욱 강력한 성범죄 처벌을 위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 또한 묵살됐다.

    이 활동가는 "26만 명이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가 조직적으로, 대규모로 이뤄진 현장의 지표"라며 "디지털 성범죄에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몇차례나 있었다. 여성들은 그때마다 강력하게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정부나 사법부는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범죄라 가볍게 여기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규정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디지털 성범죄가 없도록 촘촘한 법망을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시작은 서구 국가들처럼 성착취 영상물 소지자·구매자까지 처벌 받는 법 개정일 것이다.

    이 상임대표는 "이전까지 남성이 '음란물'을 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침해하지 말아야 할 권리로 여겨졌다. 이제 이런 통념이 깨질 시점"이라며 "성착취 촬영물은 '포르노'로 취급돼 이것이 여성들의 삶과 인권을 침해하는 성범죄라는 경계심 없이 양산됐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이고, 법의 사각지대를 찾아내서 촘촘하게 재구성해야 한다. 소지자·구매자까지 처벌 가능한 수요차단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을 폭력적으로 대상화하는 성산업 시장을 과연 표현의 자유나 권리로만 접근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디지털 성범죄에도 계획부터 실행, 지시, 동조에 이르기까지 '공범'이라는 개념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지금 박사를 비롯한 그 운영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n번방과 같은 성착취, 성범죄는 바로 그런 공범들로 인해 완성됐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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