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성접대와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이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폭로한 공익신고자에 대해 법적조치를 거론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 내부 관계자로 추정되는 해당 공익신고자가 수사자료를 함부로 유출한 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 내용에 직무상 비밀이 포함된 경우도 신고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차 본부장의 책임추궁이 힘을 받으려면, 이번 공익신고가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라 보호받지 못하는 부정한 신고행위라는 점이 확인돼야 하는 상황이다.
◇특정 정당에 먼저 공익신고…"법상 문제없어"차 본부장은 지난 25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익신고자가) 검찰 관계자로 의심된다"며 "수사 관련자가 민감한 수사기록을 통째로 특정 정당에 넘기는 것은 공무상 기밀유출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제14조는 공익신고 등의 내용에 직무상 비밀이 포함된 경우에도 다른 법령이나 규칙 등에 따른 직무상 비밀준수 의무를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이나 기관 내부에서 벌어진 비위행위를 신고하려면 불가피하게 기밀자료 등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를 두고 유출 책임을 묻는다면 공익신고 제도의 취지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정보라 더욱 비밀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기업의 핵심 기술관련 정보나 외교·안보 관련 정보 등도 마찬가지"라며 "이를 감안하고도 공익침해행위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 연합뉴스
특히 차 본부장은 수사기록을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기관이 아닌 '특정 정당'에 넘긴 점을 거론하며 문제 삼았지만 법상으론 하자가 없는 부분이다. 공익신고를 할 수 있는 기관 등을 규정한 공익신고자보호법 제6조와 시행령 제5조에서는 국회의원에게도 신고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법률 대변인인 김한규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국민의힘에 공익신고서를 먼저 제공했다는 점에서 목적의 순수성에 의구심이 든다"며 "수사기관이나 국민권익위원회 등 제한된 기관이 신고했을 때만 책임감면을 적용받지, 국민의힘이나 언론에 공개할 경우에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국회의원에 먼저 신고를 하고, 이를 국회의원이 공익침해행위 조사·감독기관이나 수사기관, 위원회 등에 보내는 것이 가능한 구조다.
◇'직권남용죄'는 공익침해행위 아니다?…출입국관리법 위반 신고공익신고 제도의 취지를 몰각한 '신고자 때리기'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차 본부장은 "신고자가 문제 삼는 것으로 보이는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공익신고자보호법 별표에 규정된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률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공익신고 대상이 되는 '공익침해행위'도 법에 규정돼 있는데, 이에 해당하지 않는 내용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고자가 최초로 문제를 삼은 공익침해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이는 공익침해행위로 인정되는 부분이다.
위법성 논란이 불거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방검찰청 관계자들이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중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일지라도 사전 출국금지나 긴급출국금지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로운 출국을 제지하거나 출국 여부를 사찰해서는 안되는데, 법무부 공무원들이 김 전 차관에 대해서는 이같은 일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법무부 윗선의 직권남용 의혹은 이 공익신고 내용을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혐의다.
◇'부정한 신고' 요건 엄격…신고자료 외부에 줬다면 문제 될 수도공익신고법에서는 ①공익신고 내용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 ②공익신고와 관련해 금품이나 특혜를 요구하거나 그밖의 부정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공익신고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까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법무부 측도 당시 검사의 출국금지 요청에 검사장 관인이 생략되는 등의 서류상 흠결이 있었던 점은 인정한 상황이다. 다만 추 장관은 이와 관련해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출국금지 조치를 할 수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서류상 흠결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남은 것은 신고자가 신고를 대가로 금품이나 특혜를 요구하는 등 부정한 목적이 있는 경우지만, 현재로선 앞서 살펴본 '국민의힘 제보 의혹' 등 법이나 논리상으로 근거 없는 의혹이 제기되는 수준이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돈이나 특혜 요구가 동반됐을지라도 공익침해행위를 고발하려는 목적이 함께 있다면, 공익신고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위법성 논란이 불거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법무부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21일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 수원지방검찰청 차량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부분의 공익신고에 대해 책임자들은 '부정한 신고'라고 비난하기 마련"이라며 "공익신고를 함부로 폄하하지 않기 위해 신고내용이 명백히 거짓이거나 공익침해행위를 방지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다른 목적이 확인된 경우에만 공익신고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신고자가 공익신고 내용을 법상의 신고기관이 아닌 언론이나 다른 단체 등에 적극적으로 알린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공익제보 목적에서 정보를 전달한 수준을 넘어 기밀자료를 언론 등에 넘긴 경우엔 그 제보의 취지와 여파 등에 따라 공익제보로 보호대상이 될지 여부를 저울질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일 수원지법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폭로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에 대해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수사기관이나 감사원 등에 고발하는 절차를 알고 있었음에도 언론에 첩보보고서를 제공해 논란을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 이정섭)는 전날 대검 반부패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2019년 출국금지 관련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이성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현 서울중앙지검장) 등 윗선에서 수사 확대를 막았다는 의혹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