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30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추행 피해 이후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故이모 중사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 한 공군 군사경찰단을 비판하고 있다. 백담 수습기자
공군 군사경찰단이 강제추행 피해 이후 군(軍)의 2차 가해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모 중사 사건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군인권센터(센터)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감춘 국방부에 더 이상 수사를 맡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센터는 30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제보를 통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의 행태가 단순히 허위보고 지시에 그치지 않고 사건 수사 전체를 의도적으로 방해, 은폐하는 데에 이르렀다는 새로운 정황을 명백한 증거와 함께 입수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이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지난달 22일과 23일 이틀 간 군사경찰단에서 작성한 4종의 사건보고서를 공개했다.
먼저 지난달 22일 새벽 이 중사의 사망을 인지한 직후 작성된 초기보고서는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중앙수사대 수사상황실을 통해 국방부 조사본부에 보고된 것으로 파악됐다. '15비(제15특수임무비행단), 20전비(20전투비행단) 영내관사에서 목매어 사망'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이 중사가 전날 남편과 혼인신고를 한 뒤 이튿날 아침 8시경 이 중사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 의해 발견된 상황을 담고 있다. 센터는 "통상 첫 보고는 신속히 사망사실 자체만을 정리해 첫 번째 문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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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당일인 같은 날 오전 역시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중앙수사대가 쓴 2차 발생보고서는 군사경찰단장이 공군참모총장에게 직접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문건에는 이 중사가 지난 3월 2일 장모 중사 등 선임 4명과 술을 마시고 차량으로 귀가 중 뒷자리에 동승한 장 중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적시돼 있다. 보고서에는 장 중사가 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으며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 이 중사는 생전에 본인 희망에 따라 15비로 근무지를 옮겼단 점 등이 모두 적혔다.
이에 대해 센터는 "이 중사가 강제추행 피해자란 점, 강제추행 사건의 개략, 수사 진행상황, 이후 소속부대 인사조치 등이 상세히 기록돼있다. 즉, 공군참모총장과 공군 수사라인은 이미 사망 당일에 이 중사의 극단적 선택 이유가 강제추행으로 말미암았다는 정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페이스북 캡처
사망일 이뤄진 현장감식과 검시 결과 등이 담긴 3차 세부보고서는 하루 뒤인 지난달 23일 작성됐다. 센터 임태훈 소장은 "군사경찰단장은 이날 출근을 안 했고 중앙수사대장이 공군참모총장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의 유가족 반응을 보면 '부대 일부 인원이 딸에게 가해자 선처를 요구해 힘들어했다'며 조사 및 처벌을 원한다고 돼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치사항은 '전(前) 소속대 부서원 대상, 강제추행사건 가해자 비호여부 조사예정'이라 돼 있고 (이 중사) 아버지의 말을 듣고 조사예정이라고 얘기했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3차 문건과 같은 날 군사경찰단이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고한 4번째 문건에 앞선 보고서 핵심내용이 통째로 빠졌다는 점이다. 임 소장은 "우선 이 중사가 중대 성범죄 피해자란 사실이 모두 빠졌다. 이는 지난 회견에서 폭로한 사실"이라며 "공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족의 반응을 완전히 조작했다. 마치 유족이 사망동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 것처럼 둔갑되었고 '조사·처벌 요구'는 '애통해하는 것 외 특이반응 없음'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페이스북 캡처
실제로 해당 문서의 개요에는 이전 문서들과 달리 사망한 이 중사와 그를 발견한 남편의 인적사항만이 담겼다. 보고서는 유족 반응과 관련해 '유가족(부모)은 "딸이 스스로 사망한 것을 인정하지만, 사망동기를 명확히 밝혀달라"며 애통해하는 것 외 특이반응 없음"이라고 적었다. 딸의 극단적 선택 동기를 이미 짐작하고 있던 데다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까지 요청했던 이 중사의 부모가 영문도 모르고 딸의 죽음을 알게 된 이들로 뒤바뀐 것이다.
장 중사 등을 두둔한 부대 내 '2차 가해' 관련 조사예정 사항도 완전히 누락됐다. 임 소장은 "일련의 상황이 단순한 허위보고를 넘어 사건 무마·은폐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이는 군사경찰단장이 중앙수사대의 사건 조사계획을 아예 무산시킨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언론을 통해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까지 군 검찰, 군사경찰은 2차 가해에 대한 어떤 조사도 진행한 바 없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또한 보고문건 일체를 일찌감치 확보했음에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임 소장은 "국방부 검찰단,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4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을 압수수색하며 이 문건들을 모두 확보해놓고도 지난 25일에 이르기까지 군사경찰단장조차 입건하지 않았다. (뒤늦은) 입건 역시 센터의 폭로,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 등으로 마지못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방부는 공군 군사경찰의 행태가 단순 허위보고를 넘어 수사 방해정황에 이르고 있단 점을 문건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고 감사과정에서 관련자 진술을 통해 이러한 지시가 군사경찰단장에 의해 구체적으로 이뤄졌다는 정황도 확보했다"며 "국방부가 취했어야 할 행동은 군사경찰단장에 대한 즉시 구속"이라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공군참모총장이 보고받은 내용을 상부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에 보고해야 하는 건데 이 과정에서 군사경찰단장에 의해 손을 탄 것"이라며 "군사경찰단장 측은 사망과 성추행 피해의 인과관계가 명확치 않아 뺐다는 반론을 하고 있다던데 보고체계 상 그게 합당한가. 죄를 덜기 위해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더 이상 국방부에 이 중사 사건의 수사를 맡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국방부 검찰단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지부진하게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에게 이를 감추고 어리숙한 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방부 검찰단장, 국방부 조사본부장을 즉시 보직 해임하여 사건 수사로부터 배제해야 한다. 군사경찰단장을 지금이라도 즉시 구속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덮어버리려고 했는지 전모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