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1만명 살지만 여객선으로 4시간 거리…전문의 2명밖에 없는 섬" ②"창문 닫아도 실내에 모래 한가득"…주민 건강과 맞바꾼 백령신항 공사 ③"24시간 아닌 12시간의 삶"…해지면 못 움직이는 백령도 (끝) |
지난달 29일 인천 옹진군 백령면사무소에서 열린 '인천시장과 백령주민과의 대화' 모습. 연합뉴스
"근거법도 없는 '서북도서 선박 운항 관리 규정'으로 야간항행은 물론 조업구역도 제약된 삶을 살았습니다. 2년 전 선박안전조업법이라는 법령이 제정됐지만 이 법마저도 어민들의 조업활동을 해군이 통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타지역 어선의 조업을 허용한 곳도 전국에서 인천과 서해5도가 유일합니다. 언제까지 빼앗긴 삶을 살아야 합니까."
지난달 29일 인천 옹진군 백령면사무소에서 열린 '인천시장과 백령주민의 대화'에서도 서해5도 어민들의 조업 통제 완화 요구가 이어졌다. 그동안 백령도를 비롯한 연평도와 대청도 등 서해5도 어민들은 어업활동 통제 완화를 꾸준히 요구했다. 이 문제는 서해5도 주민들의 정주여건과 기본권을 제약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4일 인천시와 옹진군, 서해5도 주민 등에 따르면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5도 어민들이 줄곧 개선을 요구하는 문제는 야간 조업 제한과 해양경찰의 어선 출·입항 통제, 조업구역 제한 등 3가지다.
분단 이후 이어진 해군의 어선 입·출항 통제
서해5도 어민들은 한국전쟁 이후 줄곧 조업시 해군의 통제를 받았다. 그러나 군이 서해5도 어민들의 어선 출·입항을 통제할 법적 근거는 없었다.
1973년 북한은 영토로부터 12해리 떨어진 해안은 모두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했다. 즉 휴전 당시 백령도를 비롯한 6개 섬은 북한의 육지로부터 12해리 안에 있어 섬은 남한과 UN군의 관할이지만 섬을 둘러싼 바다는 북한 것이어서 출항시 북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우리 어선의 피랍을 막기 위해 선박을 호송하기 시작했다. 1987년에는 서북도서를 운항하는 여객선과 화물선, 어획물 운반선 등 모든 선박의 운항을 해군이 통제하는 '서북도서 선박운항규정'을 제정해 해군(제2함대작전과)이 담당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서해5도 어민들이 출항하려면 24시간 전에 해군 2함대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 통보해야만 했다. 배 수리를 위해 인천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24시가 전에 신고해야 출항할 수 있는 불편을 겪었다.
특히 해군 업무가 중단되는 주말에 서해5도 어선이 선박 수리 등의 이유로 인천항에 정박하면 월요일까지 기다려 출항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하루를 더 인천항에 보내는 일이 잦았다.
이에 어민들은 선박운항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정부도 지난해 11월 이 의견을 받아들여 5톤 이하 어선의 출항신고 담당 기관을 해군에서 해양경찰로 이관했다. 5톤 이상의 어선은 여전히 해군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지난해 8월부터 시행한 어선안전보업법에 따라 안개 등으로 인한 기상악화 시에는 해군이 어선의 입출항을 통제하고 있다.
합참 예하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해상사격훈련을 하는 모습. 합참 제공'선착순달리기·쪼인트까기' 60~70년대 서글펐던 '군 통제의 기억'
어민들이 군부대의 어선 입·출항 통제를 받지 않으려 하는 데는 역사적 경험도 한몫하고 있다.
어민들에 따르면 1960~1970년대 서해5도에 주둔했던 우리 군은 어민들에게 반인권적인 체벌을 자행했다. 어선의 출·입항 지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노인 어부에게 어깨에 노를 메고 산봉우리까지 뜀박질을 시켜 벌을 주거나, 조업구역을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군화발로 구타하는 이른바 '쪼인트까기' 등의 체벌을 가했다.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정부 정책에 불만을 나타냈다가는 간첩으로 몰려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지내왔다고 어민들은 회고했다.
상위법이 없는 행정규칙으로 전국 유일한 야간항행 금지 구역
서해5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야간조업이 불가하다. '서북도서 선박운항규정'을 보면 서해5도 선박의 경우 주간 운항을 원칙으로 한다. 서해5도 어민들은 군사·안보 문제를 이유로 일출부터 일몰까지 주간 조업만 할 수 있었다.
다만 북한의 공격 등 위급상황 발생으로 긴급하게 선박을 투입할 경우 운항시간이 늘어나 야간운항이 가능하다. 또 승객이 급증하는 특별수송 기간이나 꽃게를 급히 옮겨야 할 때도 야간운항이 허용되지만 한 번도 야간에 여객선을 운항한 적은 없었다.
지난 1970년대에는 전국 해역 야간운항이 금지되다가 2007년 해양수산부 훈령 개정으로 모두 허용했다. 하지만 옹진군 서해5도는 북한과 인접한 지리적 환경으로 제외됐다. 야간에 피랍 등 북한의 공격을 받을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다.
특히 어장이 서해 NLL(북방한계선)과 인접해 남북관계 긴장, 군사훈련 등으로 잦은 조업통제가 있었다. 기상악화도 빈번해 어로활동은 연간 150여일에 불과한 경우가 잦았다.
게다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등 조업환경이 열악해 서해5도 주민들의 정주 여건 개선 및 소득 증대를 위해 조업시간 연장과 어선 통제권한을 해군에서 해경으로 이관하는 건 주민들의 오랜 민원이었다.
이에 정부가 2019년 3월 일출 전 30분, 일몰 후 30분 등 조업시간을 1시간 연장했지만 체감하는 효과는 크지 않다.
서북도서 선박운항규정은 상위법이 없는 행정규칙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규정이지만, 입출항 신고 외에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야간항해를 금지하는 등 서해5도 주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서해5도 인근 어장도 및 2019년 2월 추가된 D어장 모습. 해양수산부 제공비좁은 조업공간…어장확대 했지만 있으나마나
서해5도의 제한적인 어장 규모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통상 우리나라의 어장은 육지에서 12해리 거리인 영해 내 구역이다. 여객선 항로 등을 제외하면 자유롭게 조업활동을 할 수 있다.
서해5도의 경우 섬 인근 특정구역을 어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해5도의 어장은 연평어장을 포함해 1859㎢ 규모다. 이전에는 1614㎢였지만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해양수산부·국방부·해양경찰청·인천시 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2019년 2월 소폭 늘었다.
그러나 백령도 어민들은 늘어난 어장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추가 어장 가운데 백령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50~100㎞ 거리다. 어선으로 왕복 6시간 걸리는 곳도 있다. 인천항에서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편도 4시간 거리(230㎞)라는 걸 감안하면 턱없이 멀다. 결과적으로 있으나마나한 어장이 됐다.
이에 인천시는 최근 백령도 인근 어장과 추가어장 인근 295㎢, 연평어장 인근 102㎢ 등의 구역에서 조업이 추가로 가능하도록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박영길 인천시 해양항공국장은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5도 어민들을 위해 어장확장과 조업시간 연장 등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며 "국방부 등과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