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국회사진취재단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용산 집무실 시대'를 선언한 지 하루 만에 현 정권이 제동을 걸면서 임기 시작 전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안보 공백과 경호 문제 등을 거론하며 난색을 표한 가운데 윤 당선인이 교착 상태를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尹, '용산 시대' 선언했지만…文 대통령 "안보 공백" 급제동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대선 과정에서 '광화문 집무실 청사'를 약속했던 윤 당선인은 대선 이후 경호 및 통신 문제 등으로 인해 용산으로 급선회하면서 기존 청와대 부지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현 청와대 관저를 사용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나기 위해선 공간 탈피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윤 당선인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진행할 만큼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도 순조롭게 협조해줄 것이라는 당초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예비비 496억 원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의 검토를 거쳐 내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것"이라며 "현 정부와 협조는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윤 당선인이 지난 주말 집무실 후보 지역인 용산 국방부 청사를 답사한 데 이어 전날 기자회견에서 직접 '용산 이전'을 공식 발표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졸속 이전"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러나 청와대 쪽에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을 뿐더러 문 대통령이 당선인과 양자 회동 무산 이후
청와대 내부 입단속에 나서는 등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날 공개적인 급제동은 윤 당선인 측에선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가까웠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 중인 청와대 집무실 이전 등과 관련 정부 입장 등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4시쯤 브리핑에서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 센터 이전이 안보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이 없다면 국방부, 합참, 청와대 모두 더 준비된 가운데 추진하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장관회의를 주재한 문 대통령이 청와대 이전 계획을 보고 받은 후 윤 당선인 측에 '급제동'을 건 셈이다. 윤 당선인 측은 22일 열리는 국무회의에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예비비 배정 안건 상정을 예상했지만, 사실상 상정은 어려운 분위기다.
"기존 청와대는 안 간다" 굽히지 않는 尹…리더십 시험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관련 신·구 권력의 정면충돌 양상이 나타나면서 당분간 정국 급랭이 예상되는 21일 밤 청와대와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이 있는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이 각각 불을 밝히고 있다. 한편 이날 밤 이사 준비를 멈춘 채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모습. 연합뉴스예상치 못한 문 대통령의 반응에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 브리핑이 나온 후 약 2시간 동안 회의 끝에 입장을 내놨다. 김 당선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대해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조치할 시급한 민생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임기를 인수위 임시 사무실에 있는 통의동에서 시작할지라도
현 청와대 부지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한 셈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놓고 양측의 미묘한 신경전이 고조되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선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국방위원들은 별도 성명서에서 "청와대 이전을 지연시킴으로써 대통령이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경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대한민국 안보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라며 "있지도 않은 안보공백을 언급하면서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방해하는 행위는 대선불복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도 구두 논평에서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국민께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냐"고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집무실 이전'을 놓고 과거 정권과 대립 구도가 장기화될 조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과적으론 권력의 축이 윤 당선인 쪽으로 이동하며 판정승이 예상되지만, 취임식을 앞두고
향후 5년 간 국정과제를 홍보할 기회를 엉뚱한 곳에 소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이미 지는 해인 문재인 정권과 충돌해서 얻을 게 별로 없다"며 "
집무실 이전 계획의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서 정쟁화 되고 있는데 초반 위기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관계자도 통화에서 "일단
구중궁궐인 청와대에서 나오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용산 집무실이 졸속 추진되면서 틀어진 것 같다"며 "이런 민감한 사안에 굳이 불을 붙여 논쟁을 키우는 현 청와대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