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장. 송호재 기자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업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사전 선거 부실 준비와 부정투표 의혹 제기 등 각종 민원에 시달린 일선 지방직 공무원들이, 오는 6월 전국 동시 지방선거 업무에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무원 노동조합 역시 의견 수렴에 나서는 등 반발을 예고하고 있어, 대선 투표 부실 준비 여파가 지방선거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부산 A구청 소속 공무원 B씨는 지난 9일 대선 투표 당일 상황을 떠올리며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말했다. 조용하게 치러진 기존 투표와 달리, 유독 올해 대선은 각종 민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B씨에 따르면 대선 본 투표일인 지난 9일 오후 한 여성 유권자가 투표소를 찾아왔다. 여성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특정 후보의 기호에 표기가 되지 않아 무효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투표용지에 문제가 있는지 보고 다시 투표해야 하니, 오전에 투표함에 넣은 용지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용지에 문제가 없다"고 재차 설명했지만, 여성은 막무가내로 떼를 쓰고 소동을 일으켰다. 결국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투표장은 잠잠해졌다.
앞선 오전에는 한 남성 유권자가 찾아와 기표함에 가림막이 없는 점을 지적하며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다른 유권자는 "기표 도장에 문제가 있다"며 소동을 일으켜 선거 관리원들이 직접 확인에 나서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B씨는 전했다.
B씨는 "온종일 투표 용지나 도장, 기표함을 놓고 문제를 제기하는 유권자가 끊이지 않아 투표 업무를 진행하기 힘들 정도였다"며 "주변 직원들 역시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오는 지방선거를 포함해 앞으로 선거 업무에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기표소 모습. 송호재 기자사전 투표 업무를 지원했던 C구청 소속 공무원 D씨 역시 이번 선거 업무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정도로 고충이 심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선거관리위원회의 준비 부실 때문에 일선 공무원이 일종의 '욕받이'로 전락했다며 선거 지원 업무를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D씨는 "선거는 중요한 국가 행사인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를 지원해왔는데, 이번 선거는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공무원을 부정선거의 온상으로 보는 듯한 각종 민원 때문에 자존감에도 상처를 입었다"며 "선관위 잘못 때문에 일선 지방직 공무원이 욕을 먹는 상황에서 더는 선거 업무에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공무원 노동조합 역시 일선 공무원들이 이같은 고충을 호소하자 동별로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특히 코로나 확진자 사전 투표 부실 준비 논란에 따른 유권자 불신이 본 투표까지 이어졌다며 대책을 요구할 방침이다.
한 지방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는 "부실한 사전 투표 준비 때문에 생긴 불신이 본 투표장까지 이어져 각종 소동이 빚어진 것으로 본다. 결국 선관위의 잘못 때문에 일선 지방공무원들만 피해를 보게 된 것"이라며 "동별로 지난 대선 때 발생한 문제점이나 불만, 개선 요구 등을 청취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합 차원에서 개선 방안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박진홍 기자노조는 지난 대선 전에도 지방공무원을 사실상 강제로 선거 업무에 차줄하고 있다며 선관위와 대립한 바 있어,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일선 공무원들의 선거업무 지원 기피 현상이 심화할 경우 선거사무원 확보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런 논란에 대해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불만이 나온 만큼, 중앙선관위 차원에서 대비책을 마련해 지방선거 대비에 나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지난 선거와 관련한 각종 논란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중앙선관위 차원에서 이미 대비책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고, 선거사무원 문제 역시 중앙에서 방안을 찾고 있다"며 "중앙 차원의 지침이 내려오면 지역에서도 그에 맞춰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