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통일부는 4일 남북 회담 관련 일부 문서를 시범 공개했다. 분단 이후 남북대화의 첫 문을 연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 관련 문서이다.
분단에 이어 전쟁까지 치른 남북이 공식적으로 첫 대화를 나눈 것은 지난 1970년 8월 20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에서였다.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1970년 8월 12일 방송을 통해 남북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제네바 회담을 제의하자, 손성필 북한 적십자회 위원장이 이틀 뒤 판문점 회담으로 수정 제의한 데 따른 것이다.
손성필 위원장은 남북 회담 진행을 준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신임장을 가진 파견원들이 판문점에서 서신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연락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면서, "8월 20일 12시에 우리 적십자회의 서신을 가진 2명의 파견원을 판문점에 보내려고 한다. 그 시각에 귀사의 파견원이 현장에서 우리의 서신을 수교받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고 일단 나가 만난 것이 바로 분단 25년만의 첫 남북 공식 대화, 즉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이었던 셈이다. 남측에서 2명, 북측에서 2명이 나왔다.
25년 만의 첫 대화…南 "안녕하십니까?" 北 "동포 만나서 반갑습니다"
통일부는 남북회담이 시작된 1970년대 초반의 남북회담 문서 및 사진들을 4일 일반 국민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은 첫 남북 접촉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공개된 사료에 따르면 남측에서 첫 대화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자, 북측에서 "동포들과 서로 만나니 반갑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남북의 파견원들이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갖고 온 신임장을 보여주며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방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남북이 처음 접촉하는 자리이다보니 이름도 알지 못하고 나갔을 것"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예를 들자면 신임장 제시 후 남측에서 "어느 쪽이 주 대표 선생이신가요? 오른 쪽이 염 선생이고 이쪽이 서 선생인기가요?"하고 물으니, 북측에서 "제가 서성철이고 이쪽이 염종련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였다.
이런 풍경은 냉전 속에 체제 경쟁을 벌이던 남북이 당시 미중 간에 조성되는 데탕트 흐름에 자극받아 전격적으로 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이진 에피소드로 풀이된다.
지난 2000년 5월 18일 자유의 집에 설치된 남북한 직통전화를 통해 우리측 연락관이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남북은 이 파견원 접촉에 이어 수차례의 예비회담을 한 뒤 마침내 1972년 6월 5일 적십자 본 회담에서 논의할 5개 항의 의제를 채택한다.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의 주소와 생사를 알아내며 알리는 문제,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 사이의 자유로운 방문과 자유로운 상봉을 실현하는 문제,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인척들 사이의 자유로운 서신거래를 실시하는 문제,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 등 5개항이다.
이는 남북 간에 해결하기로 합의한 최초의 의제이지만,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의제로 평가된다.
이산가족 의제 합의 한 달 뒤에 남북은 별도의 비밀 접촉을 통해 남북 당국간 최초의 합의문서인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통일부, 남북회담 문서 공개 확대해 나갈 것
통일부는 남북회담이 시작된 1970년대 초반의 남북회담 문서 및 사진들을 4일 일반 국민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통일부 제공통일부는 이번 남북회담 문서 시범공개를 시작으로 향후 규정에 따라 남북회담 문서 공개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 앞서 통일부는 남북회담 사료 공개를 위해 올해 1월 '남북회담문서 공개에 관한 규정'을 제정해 법적 근거를 갖췄다.
통일부는 규정에 따라 예비심사·유관기관 협의·'남북회담문서 공개심의회' 등을 거쳐 문서들을 선별하고 공개해나갈 예정이다.
공개된 문서는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와 국립통일교육원, 북한자료센터 등 3곳에 마련된 '남북회담 문서 열람실'을 직접 방문해 열람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남북회담본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