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가운데 지난 6일 서울 잠수교가 강물에 잠겨 통제되고 있다. 류영주 기자
"기후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신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계속 '천재지변'이라고 할 것이냐."(우원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허리케인 카트리나급 태풍의 등장, 물폭탄이 터지는 동안 다른 지역에 펼쳐지는 폭염. 대륙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올여름 좁은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해가 갈수록 도를 더하는 극한기후로 우리나라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1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주 한반도 남부를 스쳐간 태풍 '힌남노' 탓에 10여 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태풍이 지나간 경북·경남·전남과 부산 등지에서 5천여 명이 한때 집을 떠나 대피했고, 전국에서 9만 가구 가량이 정전 피해를 입었다.
이번 태풍은 직경 1300km 크기에 순간 최대풍속 72m/s, 최저기압 920hPa이라는 사상 최고 수준의 위력을 보였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에 상륙해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키고 1200명 이상을 숨지게 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직경 1350km, 순간 최대풍속 77m/s, 최저기압 902hPa) 못지 않다.
그나마 이번 태풍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나, 100명 넘는 사망자를 냈던 2003년 태풍 '매미'보다 피해를 덜 일으켜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태풍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칠지는 알 수 없다. 힌남노보다 더 강력한 태풍이 도래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앞서 한달 전에는 서울이 물에 잠겼고, 동시에 제주도는 폭염에 시달렸다. 지난달 8일 서울 강남에 시간당 최대 136.5mm 집중호우 등 수도권·강원 일대 물폭탄이 떨어져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반면 제주 지역에서는 올여름 폭염일수가 기상관측 이래 최고치인 28일에 달했고, 지난달 10일 역대 일일 최고기온 37.5도를 80년 만에 재현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마타누스카 빙하에서 녹은 물이 웅덩이로 흘러내리는 모습. 연합뉴스이들 일련의 현상에서도 지구온난화 영향이 지적된다. 온실가스는 지구표면을 덥혀 최고기온을 직접 경신한다. 아울러 해수면 온도까지 올려 수증기 발생량을 늘리면서 태풍도 비구름도 더 많이 만든다는 얘기다. 당장 이번 힌남노도 북상할수록 바닷물이 차가워져 세력을 잃던 보통의 태풍과 달리, 고위도로 올라오면서도 파괴력을 유지했다.
실제로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2020년 남해의 연평균 해수면 온도는 19.2도로, 1980년에 비해 1.3도나 상승했다. 1900년대 초에 비해 최근 30년간 한반도 기온이 1.4도 각각 치솟았고, '강한 강수'(일강수량 80mm 이상)는 늘고 '약한 강수'는 주는 양극화가 나타났다는 국립기상과학원 연구 결과도 있다.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는 온실가스 감축에 국가 차원의 적극성이 요구된다고 입을 모은다. 핵과 화석연료 발전 대신 재생에너지 확대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9위나 된다.
지난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부산 수영구 광안리 해변 도로가 파손된 모습. 김혜민 수습기자'기후정의'를 수립할 대책 요구도 끊임없이 나온다. "기후재난은 취약한 계층에게 더 심각하다. 정부는 기후불평등의 책임을 통감하고, 해소할 정책을 내놔야 한다"(에너지정의행동)는 것이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도 정부의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일 정기국회 첫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우원식 위원장은 "이번 수해를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고 하는 국무총리 발언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해 원인은 기후위기에 따른 폭우였다. (기후위기에 따라) 앞으로도 가뭄, 태풍, 폭우 이런 게 계속 발생할 텐데, 그때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면 계속 '이것은 천재지변이다' 이렇게 얘기하겠느냐"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