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압사 참사 현장 출동했던 동료가) 계속 그 장면이 떠오른대요. 지옥 같았대요. 막 죽어 있는 사람들이 한 4~50명 널브러져 있으니까."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사 A씨는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동료가 겪은 트라우마를 전해왔다. A씨의 동료인 B씨는 6~7년차 경찰관으로, 이러한 사고를 처음 경험했다. A씨는 "(B씨에 의하면) 일은 벌어졌고 그걸 수습을 하고 있는데 내 힘을 다해도 안 되는 거고, 해보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며 "B씨가 그런(무력감을 많이 느꼈다는) 얘기를 많이 했고 당시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 C씨 또한 여전히 그날이 떠오른다. 참사 당일 호흡기 및 심장내과 환자들을 보고 있던 C씨는 "이태원 참사로 CPR 환자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정말 현실이 아닌 줄 알았던 사건이 진짜 벌어졌구나, 몸소 깨닫게 되면서 심장이 철렁 하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C씨는 "그날은 정말 유난히 잠이 들기 힘든 하루였다"고 말했다.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 및 의료진 등 참사를 직접 접한 이들부터, 타지에 살면서 언론이나 SNS를 통해 간접적으로 참사를 접한 일반 시민들까지도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로 인한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꾸 떠오르는 '그 날'…"무력감 느껴", "신경안정제 먹어야 했다"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일반 시민들 또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참사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심장이 너무 뛸 정도로 괴롭다는 것.
경기도에 거주하는 D(31)씨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평소 비상약으로 가지고 있던 신경안정제를 오랜만에 꺼내 먹어야만 했다. D씨는 "하루 종일 사고에 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좁은 공간에 있으면 질식할 것 같고 집 안에서도 한 자세로 한 공간에 못 앉아있겠다"고 말했다. 또 D씨는 "'내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하는 상상을 계속 하게 된다"며 "관련 뉴스를 끊임없이 찾아본다. 거의 중독 수준으로 밥 먹을 때조차 찾아보게 된다"고 전했다.
지난 1일 가족과 함께 이태원 분향소를 찾아 추모를 하며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던 이봄(40)씨 또한 참사 이후 잠에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참사 당일) 핼러윈을 맞아 4살 딸과 핼러윈 캠핑을 가서 되게 재밌게 놀았다"며 "재밌었던 것에 죄책감이 들 정도로 너무 미안하고 머릿속에서 이 참사가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종욱(51)씨 또한 "(참사 이후) 감정 조절이 힘들다"며 "중간에 새벽에 자다가도 깨서 '도대체 내가 뭘 위해서 지금까지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참사로 인해 과거 기억이 떠올라 더욱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학생 운동하던 20대에 경찰들이 쫓고 해산한다고 잡고 도망가고 했었는데 저기 지금 사건 난 골목보다도 훨씬 더 좁은 골목들 학생들이 몰려 들어갔었다"며 "그때 정말 내 친구들 다 깔려서 '똑같은 일이 재연되지 않았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까 잠이 안 온다, 되게 운 좋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곳곳서 트라우마 상담·치료 지원 나서
서울시청 앞 합동분향소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이태원 사고 재난심리지원 상담소'가 운영돼 현장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양형욱 기자백종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은 "이번 참사로 인해 최대 만 명까지 트라우마 심리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적 트라우마'를 완화하고자 정부는 트라우마 상담 및 치료 지원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국가트라우마 센터에 이태원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려 유가족과 부상자, 그리고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도 이번 참사와 관련해 다양한 심리지원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시청 앞 합동분향소에서 '이태원 사고 심리지원 상담 부스'를 설치해 현장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당국도 나섰다. 1~20대 사망자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사상자가 있는 학교를 대상으로 심리치료 및 상담을 실시한다. 서울시교육청은 Wee클래스에 특별상담실을 설치하고 심리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을 지원한다.
"상처 아물 시간 허락되지 않아" 심리 상담 및 지원 강화해야
서울시청 앞 합동분향소 인근 '마음안심버스'가 마련된 모습이다. 양형욱 기자하지만 심리적 지원을 받을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A씨는 "참사 현장에 지원을 갔던 동료 B씨는 그 다음날도 똑같이 출근했다, 그거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며 "(트라우마 극복하려면) 일단 좀 쉬어야 된다고 보는데, 이 직업이 그럴 수 없는 직업"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참사 피해자들을 마주했던 의료진 C씨 또한 "(참사 이후 트라우마로 인해) 업무에 지장이 생겼지만, 오프(휴식)이 보장되지 않아 계속 일을 해야했다"며 "(심리지원 상담 기회가 마련되더라도) 편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심리적 지원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사 트라우마로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는 D(31)씨 또한 "아직은 상담 받을 생각이 없다"며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사용해볼 의향이 있긴 하지만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감정 조절이 힘들고 잠을 설칠 정도로 힘들다던 김종우(51)씨 또한 "내가 개인적으로 가서 상담받고 그럴 상황은 아니잖냐, 나 정도의 트라우마 정도면 대한민국 사람 중에 트라우마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또 김씨는 "가장 피해를 입은 분들은 유족들이나 생존자들인데 그 사람들의 트라우마 치료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경찰이나 의료진 등 참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현장 투입 인력에 대한 심리 상담 및 치료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백종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은 "소방과 경찰은 직업상으로 트라우마 현장에 노출된다"며 "제대로 구할 수 없던 상황에 처하게 되면 경찰이나 의료진도 상당한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라우마가 있으면 일할 때 집중력이 떨어지고 경찰과 소방에겐 안전 문제가 될 위험성이 있다"며 "초반엔 휴식으로 회복하고 정신 건강 모니터링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또 참사를 간접적으로 겪은 일반 시민들 또한 트라우마 상담 및 치료의 필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내가 그렇게 아파도 되나,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아프다고 해서도 안 될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서도 "내 아픔의 정도 같은 걸 본인이 판단할 필요가 없다. 본인이 힘든 부분이 느껴지면 상담 서비스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