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용산구청장. 연합뉴스'핼러윈 참사'가 일어나기 약 7개월 전, 용산구는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으로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았다. 구청은 부랴부랴 대비책을 만들었고 부서별 업무는 늘었다. 집무실 이전 업무에 무게를 둔 탓에 안전 관련 업무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과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용산구청 기획예산과는 지난 3월 21일, 구청 전 부서에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따른 문제점과 대응방안'을 제출토록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이에 용산구청 자원순환과, 주택과, 공원녹지과, 도시계획과, 복지정책과 등은 3월 말까지 관련 문건을 만들어 제출했다. 대통령 집무실 주변 쓰레기 수거, 가로수 정비, 청소 차량 도색 등 대부분 구민의 안전과 삶보다 대통령실 보좌에 치중한 모습이었다.
집무실 주변 청소로 3천시간 초과 근무…꽃 가꾼 거리에서 참사
류영주 기자구청은 대통령 집무실 주변 늘어날 집회와 시위에 우선 주목했다.
자원순환과는 집무실과 관저 이전으로 생활 쓰레기 처리량이 증가하고 잦은 집회로 청소 수요와 폐기물이 늘어날 것이라며, 주변 청소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5월엔 '생활 폐기물 신속 수거 체계 추진계획'에 따라 삼각지역 인근에 무단투기 단속반을 집중 배치하겠다고도 했다. 노후한 청소 차량을 도색하고 세차 관리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방안도 담았다.
이에 자원순환과의 올해 2·3분기(4~9월) 초과근무 시간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천 시간 이상씩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청은 깔끔한 용산의 이미지도 챙기려 했다. 공원녹지과는 4월부터 10월까지 사이 참사가 발생했던 골목 앞 큰길인 이태원로 가로수 정비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명분은 인접 도로로 국빈 방문 등 주요 국가 행사 시 주요 이동 노선이 될 수 있다는 것.
꽃도 심었다. 계획 당시 구청은 "해당 구역 등은 평소 일반적인 가로녹지(시민이 이동하는 도로변의 녹지대) 차원에서 관리해 왔으나, 주요 공간으로 부각 시 가로녹지 질적 수준 향상이 필요하다"고 봤다.
용산구청이 지난 3월 작성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문제점과 대응방안' 문건 중 일부교통행정과는 6월부터 10월, 현재까지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등과 협의해 집무실 앞 '교통안전시설물 개선 설치' 작업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도로 구조를 개선하고 버스정류소를 이전하는 등 내용이었다. 이는 핼러윈 참사 현장 주변 무단증축된 불법건축물 관리를 9년간 방치했던 구청의 그간 모습과는 대비된다.
구민 민원도 대통령실로 향할까 노심초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복지정책과는 저소득 계층 대상으로 하는 긴급복지지원 사업, 용산푸드마켓 지원 등 업무를 열거하며 '복지지원 관련 불만 사항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민원 제기 우려'를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지난 5월엔 보건위생과에서 집무실 주변 식품접객업소 199개를 추려 식당 위생을 점검하기도 했다. 단속에 걸린 업소 중 34곳이 폐문 조치되고 32곳이 행정지도를 받았다.
미관(美觀)에 집중한 구청, 작년처럼만 '안전' 집중했다면
지난 여름까지 각 부서들의 대응책에 '핼러윈 안전' 우려 대목은 없었다. 구내 시설물 안전 관리 등을 담당하는 안전재난과는 따로 대응책을 내지 않았다.
게다가 올해 용산구청의 핼러윈 안전 대책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대규모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변화한 상황에 맞는 안전사고 예방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용산구청은 핼러윈 대비 특별방역 대책으로 경찰과 거점별 합동 근무를 실시했다.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점검하려는 취지였지만 사건·사고 및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작동하는 비상 연락체계도 마련돼 있었다. 종합상황실 근무 인력을 보강해 당직 중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전담 인력이 현장 대응하거나 담당 부서에 연락하도록 하기도 했다.
당시 용산구청이 주요 밀집 지역이라며 경찰과 합동 근무하는 거점으로 표시한 곳에는 이번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해밀톤호텔 별관 좌측 삼거리'가 포함됐다. 지난해와 같이 올해도 경찰 2~3명과 1개 조를 이뤄 근무했다면 인파 관리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2021년 핼러윈 기간 용산구청 경찰-직원 주요 거점 근무 장소. 붉은 원은 올해 참사가 난 지점이다.'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 조례'에도 구청의 안전 관리 책무가 적시돼있어 구청이 참사 책임을 피해 갈 수 없는 셈이다.
용산구청은 지난 3일 뒤늦게 '안전사고 예방 개선대책 TF팀'을 꾸려 2주에 1번씩 회의를 열고 있다. 안건에는 △핼러윈데이 이태원 사고 사례 분석 및 재발 방지 종합대책 △사고 현장 건축물 불법 증개축, CCTV 설치 여부 등 안전 기준 적합성 재검토 △이태원을 포함한 다중 밀집 장소(압사사고 위험지역) 실태조사·점검 등이 포함됐다.
TF팀의 단장인 박희영 용산구청장, 부단장 유승재 부구청장, 총괄반장 문인환 안전건설교통국장 등은 현재 경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참사 전후로 부적절한 대처를 한(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