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대통령실은 26일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자녀의 학교 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임명이 취소된 것과 관련해 "사안을 엄중히 보고 있다"며 개선 방안 검토에 나섰다. 공직 후보자의 자녀 문제까지 들여다보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합법성과 투명성'이라는 정부의 인사 검증 기조를 유지하면서 기술적인 개선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교육 개혁 차원에서 학교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5일 오후 7시30분쯤 정순신 변호사의 신임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취소했다. 지난 24일 임명된 정 변호사는 임명 당일 자녀의 학교 폭력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임명 취소 결정이 신속히 진행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특히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 "자유롭고 공정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내에선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고위 공직자 후보의 자녀까지 검증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인사 검증에 활용되는 공적 자료 대상 범위에는 후보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 등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2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검증에서 문제가 걸러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며 "현재 공직자 검증은 공개된 정보, 그리고 합법적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 세평(世評) 조사 등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이번에는 후보자 본인이 아니라 자녀 관련 문제라서 미흡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현행법에서 자녀와 관련해 검증할 수 있는 부분이 딱 규정돼 있다"면서도 "국적이나 주민등록, 범죄경력 등은 있지만 학교생활기록부나 원·피고 소송 진행 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관련 사건이 5년 전에 이미 언론 보도가 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언론 보도에 실명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익명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굉장히 알기 어렵다"며 "경찰 세평 조사에서도 걸러지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경찰청은 "자녀 사생활이라 검증 과정에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후임자 추천 시에는 이런 점까지 고려해 더욱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예전엔 검증 전 인터넷 검색으로 대상자의 모든 정보를 다 찾아봤다"며 "보도에는 실명이 나오지 않더라도 블로그 등에는 실명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소송 관련은 검색이 기본인데 찾아내지 못한 것을 보면 검증에 안이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의 경우 경찰 인사추천심의위원회가 검증을 걸쳐 추천하면 경찰청장의 최종 후보 추천,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거쳐 인선 작업이 마무리된다.
"합법적 범위 내에서 개선 방안 찾을 것…학교 폭력 근본적 대책도 마련"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의 모습. 류영주 기자하지만 여론은 들끓고 있다. '학교 폭력'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인사 검증에도 학교 폭력에 대한 엄정한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자녀의 문제는 자칫 '연좌제'처럼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런 부분이 있다"면서도 "이번 사안을 계기로 인사의 여러 가지 기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인사 검증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통령실은 합법성과 투명성이라는 정부의 인사 기조 아래 개선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과거 정부의 사례처럼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는 방식은 하지 않겠다는 설명이다.
앞서 정부는 '음지'에서 진행하던 인사 검증을 '양지'로 옮기겠다며 전 정부에서 운영하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 인사 1차 검증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서, 2차 검증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서 담당하는 구조로 개편했다.
또한 인사 검증 대상자가 스스로 검증하는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에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 병역 특혜 의혹 등을 반영해 관련 문항을 추가했다.
교차 검증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하지만 정 변호사는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대상자 본인의 답변이 사실과 다를 경우 교차 검증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재 인사검증 시스템에서 답변이 다를 경우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니까 검증을 위해서 조금 무리하게 자료를 수집해 보자, 이건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앞선 정부에서 개인정보를 너무 찾다 보니까 민간인 사찰이 아니냐는 이런 논의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가서 되겠느냐"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법에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개선 방안을 잘 찾아보겠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도 "우리 사회의 합의가 공직 후보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정보 공개를 요구할 것인가, 개인의 자유와 국민의 신뢰 부분이 만나는 점에서 신중하고도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인사 검증 개선 방안 검토와 함께 이번 사안에서 논란이 된 '학교 폭력' 문제는 엄중하게 보고 종합적인 근절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특히 학교 폭력 문제는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학교 폭력 문제는 굉장히 심각하고, 또 앞서 여러 번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제기됐다"며 "머지않은 시기에 회의를 개최해서 종합적인 방안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