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이돌 그룹 에스파가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첫 단독 콘서트 '싱크 : 하이퍼라인'을 열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총 25곡 중 11곡. SM엔터테인먼트의 '막내' 에스파(aespa)가 첫 단독 콘서트에서 선보인 미공개 신곡 수다.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신곡 비중이 높다. 당초 에스파가 새 앨범 발매를 맞아 준비한 공연인 까닭이다. 사정상 컴백이 미뤄진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에스파는 관객들에게 신곡 무대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걸 선택했다.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에스파의 첫 번째 단독 콘서트 '싱크 : 하이퍼 라인'(SYNK : HYPER LINE)이 개최됐다. 2019년 11월 데뷔한 후 약 3년 3개월 만에 여는 첫 콘서트였다. 에스파와 아바타 '아이', 팬덤 '마이'가 한자리에 모인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약 2시간 반가량 이어진 콘서트는 에스파라는 이름을 각인한 '넥스트 레벨'(Next Level) '블랙맘바'(Black Mamba) '새비지'(Savage)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 등 대표곡부터 풍성한 신곡, 네 멤버의 솔로 무대까지 다채로운 구성이 돋보였다.
첫 곡은 에스파의 최신곡 '걸스'(Girls)였다. 지난해 7월 발매한 두 번째 미니앨범 '걸스'(Girls) 이후 긴 공백기를 보내고 있던 에스파는, 오랜 기다림을 견뎌준 관객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듯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했다. 팡팡 터지는 폭죽으로 열기가 고조됐고, 윈터의 전자 기타 연주 때 절정에 이르러 팬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기타 연습하느라 윈터가 손에서 피도 났다고 카리나가 대신 전하자, 윈터는 "더 열심히 연습해서 다른 모습도 보여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에스파 닝닝, 지젤, 카리나, 윈터. SM엔터테인먼트 제공미니 1집 '새비지'(Savage) 수록곡 '아이너지'(ænergy)와 '아일 메이크 유 크라이'(I'll Make You Cry), 타이틀곡 '새비지'까지 초반부는 '강-강-강-강'으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로켓 펀처'(카리나), '아마멘터'(윈터), '제노 글로시'(지젤), '이디 해커'(닝닝) 등 멤버들의 필살기와 역할을 설명하는 노래 '아이너지'에서는 카리나의 독무가 인상적이었고, '아일 메이크 유 크라이'에서는 멤버들이 처음으로 돌출 무대로 나와 관객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에스파의 히트곡이자 대표곡인 '새비지' 무대에선 팬들의 응원 소리가 부쩍 커졌다. 마치 이날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우렁찬 소리가 잠실실내체육관을 흔들었다. 댄서 없이 네 명으로 진행한 '새비지'는 마지막에 검은 옷을 입은 댄서들과 합을 맞춘 새로운 안무를 추가했고, 모두가 바닥에 쓰러지는 연출로 다음 무대를 향한 호기심을 키웠다.
데뷔했을 때부터 '아바타 세계관'을 중심에 두고 '메타버스 걸그룹'이라는 점을 강조한 에스파. 이들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아이-카리나·아이-윈터·아이-지젤·아이-닝닝까지 가상 세계 속 아바타인 '아이-에스파'(ae-aespa)와 함께한다는 설정을 두고 있다.
카리나(왼쪽)와 지젤(오른쪽)은 각각 신곡 '메나쥬리'와 '투 핫 포 유' 무대를 선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이날 콘서트에서도 '아이-에스파'는 빠지지 않았다. 아이-에스파 멤버들은 첫 곡 '걸스'는 물론 '도깨비불'(Illusion)과 '블랙맘바' 등 일부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등장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윈터는 "투명 LED에 아이 친구들이 나오지 않았나. 그게 굉장히 비싸다. 진짜 비싸다"라고 해 폭소를 유발했다. 닝닝은 "우리 아이 멤버들도 칭찬해 달라. 걔네도 나름 열심히 했다"라고 거들었고, 윈터는 "저희가 열심히 돈을 벌겠다. 그 친구들 옷을 바꿔입히는 날까지"라고 해 다시 한번 폭소가 이어졌다.
또한 여러 편의 VCR로 바로 다음에 이어질 무대의 방향성을 귀띔했다. 이를테면 잠든 카리나를 다른 멤버들이 바라보는 모습으로 끝나는 영상 후, 잠들어 있던 카리나가 일어나 솔로 무대를 펼치는 식이다.
카리나는 멤버 중 처음으로 솔로 무대를 공개했다. 카리나가 작사에 참여한 '메나쥬리'(Menagerie)는 가짜 아이(ae)들이 우글대는 환각 퀘스트 속을 무서운 동물이 가득한 동물원에 비유한 가사와 강한 비트가 어우러진 곡이다. 이 무대에서도 아이-카리나가 나타나 퍼포먼스에 힘을 보탰다. 두 번째 솔로 무대는 윈터로, 사랑하는 마음을 수줍게 전하며 속삭이듯 말하는 내용의 '입모양'(Lips)이라는 곡을 들려줬다. 윈터의 깨끗하고 맑은 음색이 돋보였다.
지젤은 랩 메이킹과 작사에 참여한 '투 핫 포 유'(2Hot4U)로 힙합 느낌이 물씬 나는 핫하고 힙한 무대를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닝닝은 화려한 멜로디와 랩으로 이루어진 '웨이크 업'(Wake Up) 무대로 강렬한 유혹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싱크 : 하이퍼 라인'에서 처음 공개한 솔로 무대를 통해 멤버 전원이 혼자서 한 곡을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윈터(왼쪽)와 닝닝(오른쪽)은 각각 신곡 '입모양'과 '웨이크 업' 무대를 선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솔로 무대로 신곡 4곡을 들려준 에스파는 그룹 곡으로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7곡의 무대를 펼쳤다. 볼수록 목마른 감정을 풀어낸 감성적인 알앤비 '서스티'(Thirsty), 미니멀한 트랙에 에스파의 몽환적인 보컬이 더해진 팝 '아임 언해피'(I'm Unhappy), 경쾌한 일렉 기타 중심의 미니멀하고 세련된 트랙 '돈트 블링크'(Don't Blink)는 기존 에스파 활동곡보다 한결 듣기 편했다.
이처럼 에스파는 '세계관'에 천착한 곡이나 'SMP'(SM Music Performance, 웅장한 멜로디와 사회 비판적인 가사, 한 곡 안에서 다채로운 장르가 혼합된 듯한 구성이 특징) 장르에서 벗어난 곡도 충분히 여유롭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분히 팝적인 느낌이 가득한 '라이프스 투 쇼트'(Life's Too Short) 역시 귀를 사로잡는 기타 리프와 밝은 톤의 보컬로 에스파가 '듣는 음악'에서도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신곡 중 '핫 에어 벌룬'(Hot Air Balloon)과 '욜로'(YOLO)는 에스파 곡 중에서도 가장 밝고 통통 튀는 느낌이어서 새롭게 느껴졌다. '핫 에어 벌룬'에서는 원숭이, 당근, 토끼, 고양이 등 귀여운 캐릭터 인형이 나왔고 수월한 안무 난이도가 눈에 띄었다. '욜로'에서는 에스파 멤버들도 공식 응원봉을 들고 무대를 즐겼다. 신곡은 아니지만 '링고'(Lingo)도 이 계열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통통 튀고 상큼한 곡이었다.
에스파가 '아이너지' 무대를 하는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솔티 & 스위트'(Salty & Sweet)는 공개된 신곡 중 그동안 에스파의 타이틀곡과 가장 비슷한 결의 곡이었다. 거친 신스와 베이스 사운드가 중심이 되는 강렬한 댄스곡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두드러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앙코르 때 선보인 발라드곡 '틸 위 미트 어게인'(Till We Meet Again)은 에스파가 팬덤 '마이'에게 불러주는 팬 송으로, 멤버들의 음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윈터는 "정말 많은 스태프분들이 저희 콘서트에 힘을 많이 써 주셨다. 저희가 이번 콘서트에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는데 많이 힘써주셔서 덕분에 첫 콘서트를 정말 재미있게 좋게 잘 마친 것 같다"라며 "앞으로도 콘서트 하면서 여러 모습 보여드릴 거니까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지젤은 "저희 오늘 너무너무 재미있게 뛰어논 것 같다. 오늘은 어제랑 좀 다른 분위기로, 마이분들도 욜로 느낌이 있더라. 되게 재미있었다. 감사하다. 우리 다음에 또 보자"라고 전했다. 닝닝은 "어제도 오늘도 너무 행복했다. 뭐랄까, 항상 같이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남은 투어도 열심히 해 보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카리나는 "저희도 덕분에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컴백을 해서 여러분한테 특별하고 재미있는 모습 많이 보여드릴 테니까, 항상 성장하는 아티스트 될 테니까, 저희가 한 번도 뱉은 말에 책임을 안 진 적이 없지 않나. 이번 컴백이랑 앞으로 에스파 활동도 많이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고, 더더더더 잘하고 멋있는 에스파 되겠다"라고 밝혔다.
에스파는 첫 단독 콘서트 '싱크 : 하이퍼라인'으로 이틀 동안 1만 관객을 만났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멤버들의 말처럼 새 앨범을 내고 컴백에 맞춰 콘서트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콘서트에서 신곡 일부를 선공개하거나, 앨범 활동을 마치고 콘서트 투어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에스파는 앨범 발매는 뒤로 밀린 채 신곡 비중이 높은 콘서트를 열었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이성수 SM 공동 대표이사는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가 강조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의 일환으로 '나무 심기'를 내걸었고, 향후 나올 SM 가수 주요 곡들에 '나무 심기'를 무분별하게 끼워 넣는 바람에 에스파의 신곡 발매도 늦어졌다고 지난 16일 폭로한 바 있다. 에스파의 팀 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무 심기'를 투영한 가사의 곡을 부르라고 이 전 총괄이 지시했고,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엉뚱한 콘텐츠"가 나와 결국 앨범 발매를 취소했다는 설명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과정에서 컴백이 사라지는 사태를 겪었지만, 에스파는 무사히 이틀간의 공연을 마쳤다. 마지막 날이었던 26일 공연에는 동방신기 최강창민, 슈퍼주니어 이특-은혁, 소녀시대 태연, 샤이니 키-민호, 레드벨벳 슬기-웬디, DJ 레이든, NCT 지성-해찬-런쥔-샤오쥔-텐-쿤 등 SM 소속 가수가 대거 참여해 응원을 보냈다. 팬덤 '마이'도 '포에버'(Forever)(약속)를 부르며 '영원히 서로의 편이 되어주자'라는 손팻말 이벤트를 벌였다.
에스파는 25일부터 26일까지 2회 공연을 통해 총 1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오는 3월 15일 오사카를 시작으로 일본에서 월드 투어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