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청. 서울 구로구 제공서울 구로구청 비서실 직원들이 수년간 초과 근무 수당을 부당 수급해왔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는데도, 구청은 '증거부족'이라며 감사 등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26일 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에 '내부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해당 글에는 구청 비서실 직원들이 지문 체크가 아닌 수기로 작성, 즉 서명만 하면 부당하게 초과 근무 수당을 받아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반 구청 직원의 경우 야외 근무자가 아닌 내근직이라면 초과 근무를 할 때 지문 체크를 통해 출퇴근 시각을 확인받아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내부 고발글. 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 캡처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내부 고발글. 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 캡처익명의 작성자 A씨는 내부 고발글에 "아직도 수기대장으로 초근(초과 근무)을 인정받고 수당을 챙기는 직원이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를 최근에 들었다"며 "수기로 늘 만땅을 받는단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정권 그곳에서 근무했던 직원에게 들었다"며 "소문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면서도 호기롭게 말하는 것을 보니 용기 한 번 내보기로 했다"고 썼다.
또 A씨는 "행사가 있거나 비상근무를 한 부서도 공문 요청 없이는 절대 초근 인정 안해주는데 그곳은 수기대장만 쓰면 초근을 인정해 준다"며 "우리는 초근하고서도 그게(담당자에게 요청하는 과정) 번거로워서 안 받을때도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총무과, 감사실도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곳에서 근무했던 전·현직 직원들 전수조사 하라. 대상자들 징계도 하고 불법으로 받은 수당 모두 반납 받아라"고 주장했다.
해당 게시글의 내용처럼 당시 일반 직원들은 1개월에 최대 55시간까지 초과 근무를 인정받지만, 비서실 직원들은 80시간까지 인정받아 수당을 받아갔다.
구로구청 비서실 초과 근무, 서울 25개 구청 중 1위
실제로 CBS노컷뉴스가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을 통해 서울 25개 구로부터 제출받은 '지난 5년간 부서별 초과근무 시간 및 수당 지급액' 자료를 살펴보면, 구로구청 비서실은 서울의 다른 구청 비서실보다도 초과 근무 시간이 훨씬 높았다.
구로구청 비서실은 2022년 5327시간, 2021년 5640시간, 2020년 6411시간, 2019년 6236시간, 2018년 5427시간을 초과 근무했다. 비서실 직원 숫자인 7명으로 나누면 지난해 1인당 초과 근무 시간은 761시간이다.
이는 서울 25개 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2,3위인 용산구청(743시간), 성동구청(740시간)보다 20여시간이나 많다. 또 구로구청 내에서 비교해봐도 통상적으로 초과 근무 수요가 많은 총무과, 치수과, 징수과 등 다른 부서에 비해 1인당 초과 근무 시간이 훨씬 높았다.
내부 고발글이 올라온 뒤 구청 직원들은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노동조합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비서실 초과 근무 수당 부당 수령 논란에 대한 직원들의 문제제기. 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 캡처비서실 초과 근무 수당 부당 수령 논란에 대한 직원들의 문제제기. 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 캡처하지만 노조가 내부고발 게시글이 올라온 자유게시판을 비공개로 전환하는 등 논란을 덮으려는 정황도 보였다. 해당 게시글이 올라온 지 8일째인 지난 1월 3일, 구청 노조는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구청 내부망을 통해서만 글을 보거나 쓸 수 있도록 바꿨다.
이같은 노조의 조치에 다수 구청 직원들은 내부 고발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구청 내부망을 통해서만 노조 홈페이지에 접근하면 IP 등 접속 기록이 증거로 남아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노조가 게시판을 비공개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공지글. 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 캡처다만 노조는 "현재 노조의 홈페이지는 비조합원을 비롯한 전국민 모두 읽기, 쓰기가 가능하다"면서도 "악의적인 비난글, 조합과 상관없는 정치·홍보글이 있었다. 반드시 차단돼야 할 것"이라며 비공개 전환 이유를 설명했다.
또 이처럼 직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결국 노조도 지난 1월 20일 구청에 비서실 초과 근무 수기 작성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게시판 비공개화를 우려하는 직원들. 구로구청 노동조합 자유게시판 캡처이에 따르면 노조는 1차로 총무과장, 행정관리국장 등 집행부 면담을 통해 비서실 등 초과 근무 수기 작성 문제 현황을 파악하고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이어 2차로 총무과에 '초과 근무 수기대장 전수조사 및 조치 요청'을 공문으로 발송했고, 3차로 감사실에 '초과 근무 수기대장 관련 감사 청구'를 했다고 밝혔다.
구청 "시정조치했으나 수기 절차 불법은 아냐" 감사·진상 조사 없다
하지만 구청은 이와 관련해 감사는 물론 진상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초과 근무의 인증방법이 수기절차(종이대장)라는 사실만으로 부정수급을 증명할 증거가 되지 않아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감사가 아닌 제도 개선을 했다"며 "비서실 내근 직원도 수기대장을 쓰지 않고, 최대 초과 근무 시간도 80시간에서 타 부서 직원과 같이 55시간까지 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밝혔다.
또 노조는 문헌일 구로구청장이 면담을 통해 "최근 비서실 문제는 발견 즉시 시정조치 지시를 했고 다만, 이 문제가 본인 취임 후 발생한 일보다는 과거 10여년 동안의 문제로 환수조치 등의 어려움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구로구에서 구의원을 역임했던 한 관계자는 "구청장이 바뀌면 비서실 직원도 싹 바뀌는 등 비서실은 구청장의 최측근"이라며 "구청장과 가까운 것이 특혜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