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퇴사한다고 했더니 개인 사유로 쓰고 퇴사하라고 하고, 직장 내 괴롭힘 조사 서류도 저에게 못 준다고 하네요.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우울증약 먹고 상담받고 그러다 너무 힘들어서 퇴사하는데 개인 사유로 사직서 쓰고 퇴사하면 실업급여 못 받나요?"
#2. "회사에서 정부지원금을 못 받는다며 일부 사업의 축소로 인한 권고사직이지만 절대 해줄 수 없다고 해서 혼자 싸우다가 지쳐서 결국 개인 사유로 사직서를 적어서 낸 상태입니다. 퇴사 후에 실업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했을 때 노동부에 신고해서 사실 조사를 한다면 제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있을까요?"
#3. "직속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중증도 우울 에피소드 및 자살위험으로 인한 치료 진단을 받았습니다. 회사에 다니기 힘들어서 육아휴직을 했고, 계약만료로 인한 퇴사로 실업급여를 받았습니다. 육아휴직 중 발생한 연차수당 지급을 요청하자, 회사 측에서는 실업급여를 받게 해줬으니 연차수당 지급을 안 해주겠다고 하고 만약 노동부에 임금체불을 걸면 실업급여를 못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4.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 후 인정받았습니다.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인정받은 문서를 공유해달라고 사측에 요청했지만, 사규 때문에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파견근로자였기 때문에 사용처에 신고했는데, 파견업체에서는 자발적 퇴사로 처리했습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제보받은 60여 건의 실업급여 관련 상담 사례를 모아 분석한 '실업급여 갑질 사례와 해결 방안'을 17일 공개했다.
분석 결과 구직급여(실업급여) 수급자격 요건을 놓고 사업주들의 부당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자발적으로 퇴사했지만 경찰, 노동청, 회사 중 한 곳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인정받지 못해 구직급여를 수급하지 못하는 경우 △해고·권고사직 등의 비자발적 사유로 퇴사했지만 사업주가 이직 사유를 거짓으로 기재해 구직급여를 받기 어렵게 되는 경우처럼 원치 않게 직장을 그만뒀는데도 급여를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또 △사업주가 받고 있는 정부지원금이 중단된다는 등의 이유로 자발적 퇴사로 처리하겠다며 구직급여 수급을 방해하는 경우 △구직급여를 수급할 수 있게 해줄 테니 해고예고수당 등 다른 법적 권리를 포기하도록 회유하거나 구직급여를 수급하는 동안 무급으로 출근하라고 지시하는 등 사업주가 회유한 바람에 급여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직장갑질119는 "가장 악랄한 수법은 회사가 부정수급으로 신고해서 실업급여를 토해내게 하는 경우"라며 "노동자가 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등으로 노동청이나 노동위원회에 회사를 신고하면 이를 취하시키기 위해 실업급여를 못 받게 하겠다고 협박한다. 법적 지식이 없는 노동자들은 회사 협박 때문에 신고를 취하해 체불임금 등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고 밝혔다.
정부지원금은 경영상 사유에 의한 권고사직, 해고 등으로 노동자를 퇴사시키는 경우에는 지급이 중단된다. 보고서는 "이를 이유로 노동자를 괴롭혀 스스로 퇴사를 선택하게 만들거나 고용보험 상실 신고 코드를 회사만 입력할 수 있기 때문에 비자발적 퇴사를 자발적 퇴사로 허위 신고하는 사례가 판을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5인 미만 사업장·하청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해도 신고조차 할 수 없어 실업급여도 받기 어려운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직장갑질119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하청노동자인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을 노동청에 신고하면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기각(취하)된다"며 "회사에서는 고용보험 상실 사유를 자발적 퇴사로 신고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 ①근로복지공단에 고용보험 상실 사유 정정 요청 ②고용노동부 고용보험심사관에게 '이직 사유 허위 작성' 심사청구 ③고용보험심사위원회에 재심사 청구 ④행정소송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직장갑질119는 "월 200만 원도 되지 않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이런 절차를 밟는 노동자는 흔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 3일~10일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실직 사유는 '비자발적 퇴사'가 83.2%를 차지했다. 실직 경험은 비정규직(23.8%)과 5인 미만(21.1%)이 정규직(7.0%)과 대기업(7.2%)의 3배에 달했다.
직장갑질119는 "자발적 퇴사자를 포함한 모든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며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보험법의 입법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이직 사유를 허위로 신고하는 사용자들을 강력히 처벌해 실업급여가 원치 않는 실직으로 고통받는 직장인들에게 최소한의 위로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이직확인서 작성 권한을 노사 양측에 균등하게 부여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경우 노동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실업급여 지급 여부를 판단 △정부지원금 중단 사유에 '자진 퇴사 강요' 추가 등을 제안했다.
앞서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노동자 비하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겠다고 했다.
이 공청회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산하 고용센터 실업급여 담당자는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이 계약기간 만료가 된 김에 쉬겠다고 하면서 온다"며 "실업급여 받는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했다.
직장갑질119 조영훈 노무사는 "밝고 명랑한 얼굴, 해외여행, 명품 선글라스… 이는 성실하게 구직활동을 하며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들을 모욕하는 말"이라며 "실업급여 받겠다고 실업자 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실업급여를 '공돈'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런 발상이 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실업급여는 노동자들이 일정 기간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비자발적으로 이직하게 된 경우 등의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만 지급된다"며 "정부가 신경을 쓰고 돌봐야 할 것은 '시럽급여'라는 유치한 말장난에 기댄 실업자 모욕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실업급여 갑질의 단속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