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리우 정경석 대표변호사와 허성훈 변호사. 김정록 기자법원이 '짝퉁' 건축물에 처음으로 '건축물 철거 명령'을 내렸다. 부산 기장군 인기 카페인 '웨이브온'과 유사한 건축물을 지어 운영 중인 울산 북구의 한 카페에 내린 명령이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박태일 부장판사)는 이뎀건축사사무소 곽희수 소장이 울산의 한 건축사사무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지난 19일 내렸다.
곽 소장은 2019년 해당 건축사사무소에서 만든 울산 북구의 A카페가 웨이브온의 건축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카페를 철거하라면서 A카페를 만든 건축사무소가 곽 소장에게 5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웨이브온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창작성을 갖췄고, 건물 내·외부에 적용된 아이디어가 유사해 A카페와 웨이브온의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내 건축물 저작권 소송에서 처음 내려진 '건축물 철거 명령', 22일 CBS노컷뉴스는 이번 판결을 이끌어 낸 법무법인 리우 정경석 대표변호사와 허성훈 변호사를 만났다.
사진 아래 웨이브온 카페와 유사한 건축 디자인의 울산 카페(사진 위). 이뎀건축사무소 제공-건축 저작권 침해 분쟁에서 법원이 '철거 명령'을 내린 것은 처음이다. 철거까지 청구하게 된 이유와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어본다면.=(정경석 변호사) 서적이나 음반의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면 폐기 결정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건축물의 경우에는 폐기했던 사례가 없다. 건축계 표절에 대해 올바른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철거라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해서 소를 제기했다. 곽 소장도 건축사로서 자존심과 건축물에 대한 만연한 표절에 대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허성훈 변호사) 법원은 건축물의 전시권을 침해했다며 권리구제로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사진이나 그림 같은 예술품은 전시권이 있다고 보기 쉽지만, 건물에도 전시권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해외에서는 철거까지 나온 사례가 있나?=(정 변호사) 찾아봤는데 사례를 찾지 못했다. 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사회경제적 비용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철거까지 해야 하느냐'하는 고민이 있더라. 자료를 찾아봐도 (실제 사례는 없고) 관념적인 논의만 있었다. 그래서 이번 판결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완성된 건축물을 철거하는 것은 사회적 비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모방한 부분만 철거하는 방식은 어려웠나?=(정 변호사) 이번 사건에서 정확하게 모방한 부분만 도려내기가 곤란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비슷했다. 또 법원은 무단으로 복제한 건물을 철거하도록 하는 것이 저작권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고취하는 데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한 것 같다.
-저작권 분쟁에서 건축물의 창작성을 입증하기 더욱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허 변호사) 건축물은 기능적인 요소가 크다. 건물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어야 하고, 안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건물로서 기능을 해야 하는 만큼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른 예술품에 비해서 제한된다. 다른 저작물들은 사실 (기능적인 측면이) 많이 없다.
=(정 변호사) 예를 들면 건물을 역삼각형으로 만들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건물은 표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제한이 생긴다. 그런데 웨이브원 건물의 경우에는 건물로서 기능해야 하는 요소들 뿐 아니라 건물의 기능과는 관계가 없고 오히려 비효율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었다. A카페에는 그런 요소들마저 발견됐다.
-'그럼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도 저작권이 인정되는 것 아니냐'며 소송이 남발될 우려는 없나.
=(허 변호사) 우선 이 건물이 저작물이냐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다른 건물들과 특별히 구별되는 독창성이 없는 일반적인 건물이라고 하면 여기서 인정되기 어렵다.
=(정 변호사) 그래서 일반 아파트가 갖는 기능적인 구조가 있기 때문에 저작물로 인정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판결이 건축물 저작권과 관련해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정 변호사) 건축물 모방에 있어서 경각심을 줄 수 있다. 이런 건물이 손해배상에 그치고 방치된다면, '그냥 손해배상하고 베끼면 되겠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대법원은 강원도 강릉의 유명 카페인 테라로사 건물 디자인을 모방했다며 사천시의 한 카페 건축주에게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정 변호사) 이번 판결로 건축업계의 창작의 자유가 위축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더라. 건물 설계하는데 표현상 제약이 생기고, 공간에서의 연출이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더 창의적으로 (건축)해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카페나 전원주택같이 나만의 공간을 지을 때 더 많은 사례를 찾아보는 노력이 늘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