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제공 지난 29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날씨지만 공연장 안팎은 열기로 후끈했다. 로비는 관객들로 빌 디딜 틈이 없었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공연 포스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며 즐거워했다. 피켓팅을 뚫고 '젊은 거장'의 연주를 실황으로 접하는 것을 자축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날 공연은 지난 8월 10일 티켓 예매 오픈 1분 만에 전석 매진됐고 현장 판매한 프로그램북은 전량 매진됐다. 미처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일부 관객은 로비에서 모니터 TV로 임윤찬의 연주를 듣기도 했다.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정명훈이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과 협연을 가졌다. 협연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베토벤이 남긴 협주곡 중 가장 온화하고 유려하며 시적이라는 평을 듣는 곡이다. 임윤찬은 3악장으로 이뤄진 이 곡을 악장마다 다른 분위기로 연주해 관객을 매혹시켰다.
1악장은 투명한 수채화 느낌으로 연주했다. 가볍지만 명징한 타건으로 풍부하고 아름다운 음률을 펼쳐냈다. 건반을 누르지 않을 때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집중했고 고개를 살짝 움직이며 리듬을 탔다. 임윤찬의 진가는 악장의 뒷 부분인 카덴차(독주자가 기량을 선보이는 시간)에서 발휘됐다. 유려하면서 담백하고 힘이 느껴졌다.
2악장은 짙은 농담의 수묵화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임윤찬은 고뇌하는 베토벤을 보는 듯 진중한 표정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2악장을 소화했다. 3악장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보는 듯 활기가 넘쳤다. 임윤찬의 에너지 넘치는 타건이 팀파니와 트럼펫 소리와 어우러지며 활력을 선사했다. 곧이어 앙코르곡 '사랑의 꿈'까지 연주했다.
50여 분간의 연주가 끝났다. 정적을 뚫고 기립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특유의 더벅머리가 하늘로 솟구치며 연주에 몰입했던 임윤찬은 어느새 수줍은 19세 천재 소년으로 돌아갔다. 안도감이 들었을까. 지휘자 정명훈에게 달려가 폭 안겼다. 객석 1열의 한 관객이 인형을 건네자 덥석 받아들기도 했다. 여운이 남는 듯 임윤찬이 퇴장하고 나서도 관객들은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뮌헨 필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들려줬다. 통상 '에로이카(영웅적) 교향곡'으로 불리는 이 곡은 최초의 낭만주의 교향곡이라는 타이틀까지 갖고 있다. 뮌헨 필은 유장하고 도도한 1악장, c단조의 장송 행진곡으로 유명한 2악장, 활기찬 스케르초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3악장, 독창적 피날레의 4악장을 부드러우면서 명료한 음색으로 연주했다.
이날 공연의 대미는 '아리랑'이 장식했다. "대한민국메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곡"이라는 정명훈의 설명과 함께 '아리랑' 선율이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임윤찬과 뮌헨 필의 협연은 12월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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