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채 상병 특검법이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두 번째로 폐기되자 곧바로 재추진 의사를 밝힌 더불어민주당과 조건부 특검 수용을 주장하고 있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치열한 수 싸움에 들어간 형국이다.
앞서 한 대표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야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는 것은 공정한 수사를 담보할 수 없다며 '제3자인 대법원장 특검 추천 방식'을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러자 최근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 대표 안(案)을 받아들이는 내용의 수정안을 추진해 여당을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대표는 아직까지 "(제 3자 추천 특검 수용) 입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밝혔지만, "당내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으겠다"며 숙고할 시간을 벌겠다고도 했다. 한 대표로선 향후 민주당이 어떤 안을 가지고 오느냐에 따라 대응책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대응하는가의 문제는 취임 초반 한 대표의 정치적 리더십을 평가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설령 민주당과 접점을 찾는다고 할지라도 당내 주류 세력인 친윤계가 여전히 특검에 강한 반대 입장이기 때문에 내부적인 설득 작업이 필수적이다.
'채 상병 특검법' 본회의 최종 폐기…與 이탈 '4표' 추정에 당황 기색도
해병대 예비역 연대 관계자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6회 국회(임시회) 제01차 본회의에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의건이 부결되자 좌절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25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선 채 상병 특검법안에 관한 재의 표결이 실시됐다. 그 결과 재석 의원 299명 중 찬성 194명, 반대 104명, 무효 1명으로 부결돼 최종 폐기됐다. 이날 해당 법안에 대한 여당의 거부 명분은 '민주당의 정쟁용 악법'으로, 당내에서도 크게 다툴 여지는 없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전당대회 내내 민주당이 발의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강력히 반대해왔다"라고 명확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반대표가 104표가 나온 것을 두고 여권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인 108명은 본회의 직전 '반대 당론'을 정한 뒤 표결에 참여했지만, 최소 4명이 찬성 혹은 무효표를 던져 당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재의결의 경우 여당에서 8표의 이탈표만 나와도 대통령의 거부권이 무력화된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CBS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특검으로 계속 조여오는데 무조건적으로 거부만 하라는 데 대한 반감 아니겠나"라고 전하기도 했다.
다만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탈표로 보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 결속이 깨졌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며 "특검법이 위헌적 요소가 많은 법이라는 부당함을 의원들이 확인하고 부결시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민주, '제3자 추천 특검' 추진 가능성 낮게보는 '친한' 왜?
이런 가운데 한 대표 측은 자신이 주장하는 '제3자 추천 특검'안을 두고 "입장이 달라진 게 없다"면서도 민주당이 가지고 나오는 안을 먼저 본 뒤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여기엔 당권 연임이 예상되는 민주당 이재명 당대표 후보가 제3자 추천안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던 만큼, 실제로 민주당이 '한동훈 안'을 그대로 추진하기는 쉽지 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깔려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9일 CBS 라디오 토론회에서 "현재 특검법대로 하는 게 정의롭다"며 제3자가 특검을 뽑는 방식이 아닌 기존 안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의 지도부 일원인 한 의원은 통화에서 "이재명 전 대표가 이미 공정하게 수사를 하라는 제안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면서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며 "제3자 추천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한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장동혁 최고위원도 이날 오전 SBS 라디오에 출연해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된다면 '제3자 특검' 논의를 굳이 이어갈 실익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나서서 제3자 특검에 대해 논의를 이어간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최고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야당이 더 이상 같은 내용의 특검법을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제가 깔려있다.
다만 최근 민주당 내부에선 '한동훈 안'도 함께 논의해 수 있다는 기류가 생겨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제3자 추천 특검'안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려워 보인다. 해당 주장이 최근 힘을 받는 데엔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협상안을 수용할 경우 한 대표가 민주당의 제안을 거절할 명분을 없어진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는 여권의 내부 분열도 노려볼 수 있는 전략이다.
먼저 한 대표가 말을 바꿔 자신의 안을 거부할 경우 당선을 위해 채 상병 특검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국민과의 눈높이'를 강조하며 쌓아온 쇄신 이미지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또 반대로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 제3자 추천 특검을 추진할 경우에도, 당정 정면 충돌 등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현재까지 대통령실을 비롯해 당내에선 한 대표의 주장에 반대하는 기류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원내 사안은 원내대표 중심으로 간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특검을 추진할 경우 친한계와 친윤계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친한계 성향의 당 관계자는 "우리가 우리 안을 못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방어할 논리가 없기 때문에 강행하는 그림이 그려질 수 밖에 없지 않겠나"라며 "또 재표결 과정에서 일부 친한계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분열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