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 CBS 아나운서.합계출산율 0.68명. 놀랄 말한 수치의 저출산 시대입니다. 미용실에서 만난 한 미혼 여성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아이를 낳고 싶을 때마다 각종 육아솔루션 프로그램 속 아이들의 '금쪽같은' 거친 언행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툭하면 떼를 쓰고 바닥에서 뒹굴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심각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감당할지 몰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부모들을 보면서, '나와 내 아이가 저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처음부터 포기가 나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출산이나 육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계기는 비단 그 프로그램만은 아닐 것입니다. 인기를 끄는 다른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산은 물론이고 결혼 자체가 아예 지옥이라며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카메라 앞에서 쏟아 내거나, 고등학생들이 엄마 아빠가 되어 어둡고 복잡한 가정사 속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송출됩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획 의도는 어떨지 몰라도 결국엔 결혼, 육아, 가정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부나 기타 기관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행복합니다. 아이를 낳아보세요"하는 캠페인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지 의문입니다.
이 프로그램들의 문제는 사실, 전체 중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만을 끌어 모아 그런 그들의 말과 행동 중에서도 특히나 자극적인 부분만을 골라 내보낸다는 것입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평범합니다. 여기에서 평범하다는 것은,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말 잘 듣고 순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평범한 그 시기 발달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로서 당연히 성인들보다 많은 면에서 미숙하고 서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아이들은 화내고 소리 지르다가도 이내 잘 웃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엄마, 아빠한테 안겨 애교를 부리고 기쁨을 줍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과 때로 같이 화내고 속상해하다가도 결국엔 웃으며 껴안고 잠드는 그런 평범한 하루를 보냅니다. 그것이 미디어에서 보이지 않는 진짜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런 일상 속 평범한 순간들에 대한 조명은 아닐까요. 몇몇 특별한 가정들의 심각한 사례들만이 부각되어, 이 시대의 예비 부모들에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려면 이 정도의 각오는 하고 들어와야 한다고 알게 모르게 지속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는 사진. 어린이날을 맞은 지난해 5월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찾은 시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윤창원 기자육아솔루션 프로그램들에서 암묵적으로 보내는 불편한 메시지는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문제 아이들의 모든 행동이 결국 잘못된 부모에게서 나온다는 인식입니다.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아이의 행동이 결국 부모의 무관심이나 잘못된 언행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자연스럽게 그 부모를 향한 비난의 여론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아이의 그릇된 행동이 부모에게서 기인한다는 말은 물론 타당합니다. 아이는 혼자 스스로 살아갈 수 없기에, 거의 모든 부분을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부모는 아이에게 있어 가장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유전적인 것 외에도, 부모의 평소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크면서 파생되는
모든 문제행동을 기르는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곤란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거울 속 물체는, 빛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이지 그 물체 자체는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것은 백번 맞지만, 정말 모든 것이 부모의 잘못일까요?
애초에 이 부모들이 정말 나쁘기만 하고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방송에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부모들은 그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알고 싶은 것입니다. 자칫 방송을 통해 부정적 여론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변화의 열쇠를 찾기 위해 용기를 낸 것입니다. 물론 방송이 아니더라도 이런 교육의 기회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모들은 어쩌면 각종 육아서나 육아 전문가들의 강의, 지역별 부모 프로그램 등을 쉽게 접할 수 없는 환경에 있거나 이러한 기회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었겠지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지나,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두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많이 회자되는 사회면 좋겠고, 동시에 아이의 모든 문제행동들에 대해 그 부모를 비난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 교육받은 적이 없이 어느 날 그렇게 부모가 되기에, 어떻게 하면 아이와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아이를 올바르게 훈육하며 바르게 기를 수 있는지 사실 잘 모릅니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교육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위에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장점이 많이 있다고 직접적으로 알리는 일보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낮추는 마음의 안정선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나운서 엄마의 육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