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천막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영주 기자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지연되면서 야당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장외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줄탄핵'을 예고하거나 헌법재판소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등 가시적인 공세 카드로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을 압박하고 있다.
공세의 중심에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있다. 선고 지연의 배경으로 탄핵 기각의견 우세설이 제기되는 만큼 마 후보자 임명으로 인용의견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다만 던지기식으로 내놓는 무차별적인 공세 카드에 야당 내부에서조차 경계의 목소리가 적잖이 흘러나온다.
민주당, 尹파면 유도 압박카드 분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1일 헌재의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을 유도하는 압박용 카드를 대거 쏟아냈다. 먼저 민주당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못하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현재 8인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문형배·이미선 두 재판관은 4월 18일 임기가 만료된다. 여당은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두 재판관의 임기 만료 이후에 진행된다면 그사이 한 권한대행이 공석이 될 재판관 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경우 정부측 보수 성향의 재판관들이 임명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기각될 수 있다며 총력 저지를 예고했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임기를 연장하는 법안도 추진중이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헌재법 개정안으로,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도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았다면 직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길을 열겠다는 게 골자다.
한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을 막고,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임기를 유지해 어떻게든 윤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마 후보자를 상정해 임명을 강제하는 내용도 속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헌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해당 개정안은 국회와 대법원이 선출하거나 지명한 재판관을 대통령이 7일 이내에 임명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임명한 걸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당 박용갑 의원이 발의한 헌재법 개정안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재판관 임명을 방해·거부하거나 고의로 지연시키면 징역 1년 이하에 처한다는 처벌 조항까지 신설했다. 김용민·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헌재법 개정안은 이날 야당 주도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로 회부됐다.
헌재에 대한 불안감에 막판 총공세
박찬대 국회 운영위원장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촉구 결의안을 의결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민주당 의원들의 헌재법 개정안 분출은 박찬대 원내대표가 꺼낸 엄포와 궤를 같이 한다. 앞서 박 원내대표는 "주어진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며 "4월 1일까지 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중대한 결심을 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박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운영위원회는 이날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마은혁 임명 촉구 결의안'도 통과시켰다.
'중대 결심'이 무엇인지 박 원내대표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한 권한대행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한 '쌍탄핵'을 시사했다고 분석한다.
이미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지난 28일 긴급성명을 내고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바로 한 권한대행 재탄핵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선전포고했다. 한 권한대행 탄핵에도 후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승계할 국무위원들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이들 또한 연쇄적으로 '줄탄핵'하겠다고 예고했다.
민주당의 이같은 총공세는 헌재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항간의 추측들이 불안 요소로 작용한 결과라는 진단이다.
당내 '신중론' 비등…"부정여론만 키울 수도"
다만 산발적으로 나온 법안들의 위헌 소지가 다분한 데다 줄탄핵이 자초할 비판 여론 등을 감안할 때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지적이 당 내부에서조차 제기된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우리 당이 (헌재 기류를) 제대로 알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불안하고 초조하니까 공세를 높이는 것"이라며 "물론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건 잘못된 위헌 행위이지만 줄탄핵한다고 임명이 되겠나. 이런 때일수록 강경하게 나가기보다는 차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예상보다 지연된다고 해서 헌재 기류가 기각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는 건 비약"이라며 "조바심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어 무리수를 둬서는 안 된다. 여러 법안과 공세 카드가 자칫 헌재 흔들기라는 부정 여론만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