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6일 오후 헬기 착륙을 막기 위해 국회 잔디광장에 대형버스가 배치된 모습. 황진환 기자"저거 뭐야. 헬기인가?"
옆자리에 앉은 짝이 뭘 봤다. 지난달 27일 밤 아홉 시 오십팔 분께 서울 서부간선도로에서 성산대교 쪽으로 달릴 때. 운전하던 나는 보지 못했는데 얼마큼 시간이 흐른 뒤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갔다.
"저기 저거 말야. 헬기야?"
"김포공항 가는 비행기잖아. 내려앉으려고 아마 바퀴 내렸을 걸."
"아, 그렇지. 김포공항 가는···. 이젠 밤에 뭔가 떠 깜박이면 무서워. (국회로 가는) 계엄 헬기일까 봐. 짜증 나."
"······."
나는 뭐라 할 말을 잃었다. 한숨도 조용히 붙들었고. 이십 년 넘게 서울 강서에 산 짝은 구로나 양천 하늘에서 마주친 비행기가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날 밤하늘을 가르며 깜박이는 불빛을 헬기로 짚고 말았다.
계엄 스트레스. 짝은 군대 간 아들 걱정으로 12·3 계엄을 더욱 무겁게 겪었다. 윤석열·김용현 패거리가 나라 지키던 군인 총부리를 되레 시민과 국회 쪽으로 돌리게 몰아붙였으니 걱정도 그야말로 한걱정. 47만 7440명쯤 되는 한국 군 가족 모두가 그날 밤 놀란 가슴을 여태 온전히 내리누르지 못했을 성싶다. 국회로 가는 헬기가 다시 뜰까 두려워서.
비상계엄 당시 국회 CCTV에 찍힌 계엄군 헬기 모습. 국회사무처 제공 1980년 5월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학교 앞.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닫힌 전북대 교문을 등지고 선 장갑차와 '캘리버 50 기관총'을 처음 봤다. 시커먼 총신을 감싼 구릿빛 탄환 꾸러미와 장갑차 옆 얼굴 새카만 계엄군까지. 모두 눈앞 실제.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달리 깊고 무거웠다. 무서웠다. 위문편지를 쓰며 머리에 그렸던 '믿음직하고 허물없는 우리 군인 아저씨'는 그곳에 없었다.
그해 그달 18일 영 시 전두환이 계엄을 전국으로 넓혔다. 같은 날 새벽 여섯 시께 스무 살 청년 ━ 전북대 농학과 2학년 ━ 이세종 주검이 제1 학생회관 옆에서 발견됐다. 제7 공수특전여단 계엄군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같은 대학 3학년이던 내 외삼촌 몸에선 날마다 최루탄 냄새가 났다.
1989년 7월 경기도 여주 한 야산 속 제20 기계화보병사단 61연대 여름 훈련 야영지. 입대 두 달째 이등병이던 나는 선임으로부터 "87년 6월에 61연대도 (서울 쪽) 양수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고 들었다. 이 움직임이 물낯 위로 올라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1987년 6·10 민주 항쟁 때 전두환 패거리가 계엄 '작전명령 제87-4호' 문건만 만지작거린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얼마간 움직였을 개연성이 있다. 20사단 60·61·62연대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에 가 민중 항쟁을 짓밟았고, 1990년까지 소요 진압 '충정' 훈련을 한 부대였다.
특히 61연대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 약도를 연병장에 그려 둔 채 군부가 말하는 "소요" 진압 훈련을 했다. '계엄이 일어나 61연대가 총 들고 학교로 가면 나는 어떡하지.' 검은 계엄 그늘이 내 뒷머리에 두려움으로 얹혔다.
2024년 12월 3일 밤 TV 앞. 윤석열 내란 계엄. 나는 몸 굳고 말았다. 장갑차와 탄환 꾸러미와 양수리와 소요 진압봉 따위가 머리에 휘몰아쳤다. 어찌할 바 모른 채 헝클어졌다. '시민이 다치거나 사망하면 안 되는데. 계엄군이 총 쏘면 안 될 텐데. 군대 간 아들은 괜찮을까. 윤석열이 '언론노조'를 겨냥한 적 많았는데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부터 숨겨야 하나. 나는 또 어쩌지.'
지난 1월 18일 밤 필자가 참여한 탄핵찬성 시위. 이은용 제공
윤석열을 용서할 수 없어 광장으로 갔다. 국회 앞과 국민의힘 당사와 광화문과 종로와 한남동. 수많은 한국 군 가족과 시민과 노동 운동 활동가에게 나를 기댔다. 숨 트고 가슴 폈다.
2025년 4월 4일 오전 열한 시 다시 TV 앞. 윤석열 파면. 나는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봄을 새로 붙들었다. 잔치국수를 먹었고. 젓가락 사이 국수를 내려다보며 "윤석열과 김용현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마땅하다"고 나직이 읊조렸다.

이은용 칼럼니스트.
- 전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 전 뉴스타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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