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찰, '채 상병 사건' 이첩 공문 받고 3주 동안 방치했다
▶ 글 싣는 순서 ①[단독]경찰, '채 상병 사건' 이첩 공문 받고 3주 동안 방치했다
(계속)
지난해 8월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를 해병대수사단으로부터 넘겨받은 경찰이 이첩 공문을 약 3주 동안이나 방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해병대수사단은 이첩 공문은 전산망으로, 900페이지가 넘는 사건 기록은 인편으로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오랜 시간 방치한 공문과 달리 기록은 반나절 만에 찾아온 국방부 검찰단에 내줬다.
경찰이 이첩 공문을 이도 저도 못하는 사이 국방부 검찰단이 관할 경찰청을 찾아 이첩 당시 상황을 캐묻고 조사를 벌인 사실도 파악됐다. 이후 '채 상병 사건 공문을 반송하라'는 취지의 협조 공문을 군으로부터 받고서야 경찰은 공문을 해병대로 반송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문과 기록까지 사건 이첩 적법했는데…1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해병대수사단은 지난해 8월 2일 오전 8시2분쯤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이첩하기 위한 공문을 온나라시스템에 등록했다.
온나라시스템은 정부 부처의 업무 처리를 전산화한 행정전산망 시스템이다. 통상 검경 등 수사 기관은 사건 기록 등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을 통해 주고받지만, 군 조직인 해병대수사단은 킥스에 연결돼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해병대수사단은 그간 민간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경우 온나라시스템으로 간단한 공문을 보내고 기록은 양이 방대해 사람이 직접 전달했다고 한다.
해병대수사단은 채 상병 사건의 경우에도 공문을 먼저 보낸 뒤 오전 10시30분쯤 940여 쪽에 달하는 사건 기록과 CD 2장 등 관련 자료를 인편으로 경북경찰청에 직접 전달했다.
그런데 경북경찰청 형사과는 해병대로부터 지난해 8월 2일 사건 이첩 공문을 수신한 뒤 '접수'는 하지 않았다. 해당 공문은 일종의 계류 상태로 8월 23일까지 약 3주간 방치됐다. 해병대수사단의 공문이 방치된 사이 군 검찰단은 사건 이첩 당일 오후 7시20분 경북경찰청을 찾아가 모든 수사 기록과 자료를 회수해 왔다.
사건이 군검찰 손에 떨어진 지 약 1시간 뒤 오후 8시15분쯤 해병대수사단 소속 A수사관은 경북경찰청 강력수사대 B팀장에게 항의성 전화를 걸었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A수사관과 B팀장의 통화 녹취록을 보면, 군 검찰단이 사건을 회수한 상황에 대해 A수사관은 "오늘 사건을 인계서 공문까지 다 편철해서 정확하게 인계를 드렸다고 말씀드렸다. 인계받은 것이 아니라 자료를 제공받은 정도로만 입장을 표명했던데 사유에 대해 궁금하다"고 따져 물었다. 이에 B팀장은 "예. 저희도 내부에서 지휘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사건을 회수한 군 검찰단은 다음날인 8월 3일 박정훈 대령(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을 집단 항명 수괴죄로 입건하고 해병대수사단을 압수수색 했다. A수사관은 다시 경찰에 전화해 "범죄자 취급을 받으면서 압수 수색당하고 있다"며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호소했다. 이에 B팀장은 "밝혀질 것은 밝혀져야죠"라며 탄식했다.
공문 반송 엿새 전 군검찰, 경북경찰청 방문 조사
경찰이 온나라시스템으로 받은 해병대수사단의 사건 이첩 공문을 접수한 시각은 수신한 시점에서 3주가 흐른 지난해 8월 23일 낮 12시 4분이다. 그리고 2시간 만인 오후 2시 26분 공문을 다시 해병대수사단으로 돌려보냈다.
공문 반송 6일 전 군 검찰단이 경북경찰청을 방문해 사건 이첩 과정을 훑으며 조사를 벌인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지난해 8월 21일 자 군검찰 수사보고 문건인 '경북청 소속 경찰관 면담 결과'에 따르면, 군검찰 C수사관은 지난해 8월 17~18일 경북경찰청 이모 강력범죄수사대장(경정) 등 경찰 3명을 만나 이첩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캐물었다.
C수사관은 보고서에 "이첩 공문의 접수는 수신 즉시 이뤄지기도 하고, 그다음 날 이뤄지기도 하는 등 시기는 다양하다"며 "수신 즉시 접수하지 않은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적었다. 해병대 측의 사건 이첩 공문 접수 절차가 적법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또 경찰이 해병대로부터 수사 외압 정황에 대해 들었는지, 경찰이 채 상병 사건에 대해 군과 별도로 내사를 진행한 사실이 있는지 등도 파악했다.
아울러 이전에도 유사 사건을 군에서 이첩 받아 수사한 적이 있는지, 이첩 시기 및 내용 등을 사전 조율한 사실이 있는지, 사건 기록 인수 시 해병대 측이 휴대전화를 사용했는지, 해병대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등도 면밀히 파악했다.
국방부 협조 요청 받고서 '반송' 처리했다
군검찰이 수사보고를 작성한 8월 21일, 국방부 조사본부는 경북경찰청에 '해병대 변사사건 사건 인계 관련 의견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경찰이 해병대로부터 받은 이첩 공문을 반송하라는 취지의 협조 요청이 담겼다고 한다. 실제 경북경찰청은 국방부 조사본부 공문을 수신한 뒤 이틀 만인 23일 공문을 해병대로 돌려보냈다.
군검찰의 경북청 방문은 8월 17~18일, 국방부 조사본부 재수사 최종보고서는 이틀 뒤(20일), 하루 만에 다시 조사본부가 경북청에 '이첩 공문 반송'을 요구(21일)한 것이다. 마치 군사작전처럼 긴밀히 이뤄진 모양새다.
경찰에서 해병대로 공문이 반송된 시점은 채 상병 사건을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가 임성근 당시 1사단장 등 6명을 혐의 선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시기와도 미묘하게 맞닿아있다.
해병대수사단은 장고 끝에 엿새 뒤인 8월 29일 반송된 공문을 경찰에 재반송했다. 그러나 경북경찰청은 이미 나흘 전인 8월 25일 국방부 조사본부로부터 채 상병 사건의 재검토 수사 결과를 접수한 상태였다. 결국 경찰은 지난해 9월 5일 해병대수사단에 공문을 재재반송했다.
당시 警지휘부 "대통령실 연락 없었다"
이렇듯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이첩과 회수, 공문 방치 및 반송 등 일련의 과정이 석연찮게 이뤄졌다는 지적에 대해 당시 경찰 내부에서 의사 결정권을 쥐었던 지휘부는 "적법하게 이뤄진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주원 당시 경북경찰청장(현 경찰청 미래치안정책국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지만 '관례와 규정에 따라 적절히 처리하라'고 했고 그 외의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규호 전 경북경찰청 수사부장(현 경기북부청 수사부장)은 "해당 공문을 어떻게 처리할 지 국방부와 군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며 "한 달쯤 뒤에 회신이 와서 그대로 처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군 내부에서 항명 사태가 벌어졌는데 어떻게 기록을 (항명) 당사자인 해병대수사단에 줄 수 있었겠나. 간접 증거가 될 수도 있는 자료였다"며 "기록 회수는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파악한 뒤 내부 회의까지 거쳐 내린 결정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채 상병 사건 관련 대통령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2024.06.1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