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민병주 국장의 모습.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민병주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국장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하면서도 곤란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민 전 국장은 "종북세력과 북한의 대남 활동에 대응한 활동을 했을 뿐"이라며 국정원의 선거·정치개입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민 전 국장은 "통상적으로 우리 심리전단에서 하는 일들이 종북세력에 의해 폄훼되는 국정 현안에 대한 문제인데 이걸 국정홍보와 혼재해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며 심리전단 활동이 북한에 대응한 정당한 활동이란 점을 강조했다.
원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심리전단 활동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검찰 측 질문에 대해서는 "원장님의 지시내용뿐만 아니라 심리전단 차원에서 모니터한 내용 등 여러 절차에 따른 업무를 추진한다고 보면 된다"며 부인했다.
원 전 원장의 지시사항이 아닌 담당부서에서 선정한 정치적 주제를 받아 팀장을 통해 직원들에게 지시했고, 심리전단 활동은 모두 종북세력이나 북한에 대응한 통상적인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심리전단의 활동범위와 직급, 조직 구성 등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공개된 법정에서 진술할 수 없고)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과 같다"는 대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오후 재판을 시작하기 전 "공무원 직무상 비밀이라고 한다면 수사기관(검찰)에서도 진술하지 않고 법정에서도 진술하지 않아야 마땅한데, 수사기관에서 했으면 법정에서도 하는 것이 공판중심주의에 맞는다"며 제지했다.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 참석한 댓글사건 당사자인 김모씨(오른쪽) 등 국정원 직원 증인들(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한편 민 전 국장은 구체적인 야당인사 비판글 등을 예로 든 검찰 측 질문에 대해 "내가 심리전단 국장으로 부임하기 전이라 잘 모르겠다"거나 "직원 개개인이 올린 글에 대해서 잘 모른다"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 후보의 금강산 관광 재개 공약에 대한 반대한 글을 예로 들며 정치 게시글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직원들의 개별적인 활동에 대해 일일이 보고받지 않아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또 "대한민국은 세종시라는 과거로부터 탈출해야 한다"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들며 "과거에 붙들려 언제까지고 나라를 과거로 끌고 갈 수 없다"는 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글을 올릴 당시 부임 전이었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다.
"심리전단 직원들이 (그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일반 국민들처럼 인터넷에서 의견을 개진한다면 야권 당선을 반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며 몰아세우자, 민 전 국장은 "그런 생각을 갖고 활동한 적이 없다"며 모호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2010년 12월부터 약 30개월동안 심리전단의 수장으로 근무해 왔으면서도 70여명의 심리전단 직원들의 업무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치에 맞지 않는 대답만 늘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민 전 국장의 '모르쇠 전략'에 대해 검찰 측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당한 대북 활동이었다면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가 왜 곧장 노트북 등을 경찰에 제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민 전 국장은 "업무를 보호해야 하는 그런 문제가 있었다"고 답했다.
민 전 국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 불거진 이후 종북세력에 대한 모니터링 활동만 계속했을 뿐 게시글을 남기는 활동은 모두 중단했다고 밝혔다.
또 심리전단에 대한 국정원 차원의 내부 감찰이 있었음을 밝혔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감찰 부서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대선 직후인 2012년 12월 20일 민 전 국장이 여직원 김씨에게 "선거도 끝나고 이제 흔적만 남았네요. 김00씨 덕에 선거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라며 남긴 문자의 의미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