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좌클릭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기득권 유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재벌들의 순환출자 등에 따른 가공의결권은 논쟁 자체가 사라졌다. 경제민주화 자리에는 어느 틈엔가 '경제 살리기'가 들어앉았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주요 공약은 여야 모두 복지와 경제민주화였다. 그래서 누가 진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달성할 후보이냐를 선택하는 투표였다. 그러면서도 겹겹이 다른 시각도 있었다. 여전히 지역기반은 공고했다. 여권은 영남에서, 야당후보는 호남에서 지지세가 월등했다. 미세하지만 2040과 5070의 표심이 달랐다. 5070(50~70세)의 성향은 여권편이었다. 노후대책인 복지가 관심사였다. 이에 반해 2040(20~40세)은 야권 측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배고픈 세대' vs '배아픈 세대'
'배고팠던 세대'인 5070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그러나 남이 잘 살면 '배아픈 세대' 2040은 출산ㆍ육아ㆍ교육ㆍ의료라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산업화ㆍ양극화의 그늘인 부익부 빈익빈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대선은 5070의 헝그리(Hungry), 다시 말해 '배고픔'과 2040의 앵그리(Angry) '분통'이 부딪히는 구도였다. 2040에 있어 산업화ㆍ민주화는 이미 주어진 복福이었다. 다만 그 부작용에 불만이 있었다. 바로 양극화ㆍ무질서ㆍ부패ㆍ안보불안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결국 국민 모두에게는 돌파구가 간절했다. 그것이 바로 복지와 경제민주화였다. 진보정당의 전유물처럼 돼 있던 구호를 보수정당의 박근혜 후보(이하 당시 직함)가 먼저 외쳐 버렸다. 그것은 진보정당의 전통적 깃발을 빼앗아버린 것이었다. 당명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꿨고, 당색으로 '빨간색'을 과감히 채용했다. 가뜩이나 종북ㆍ빨갱이 압박에 주눅든 야당에 선제공격을 한 셈이었다. 진보정당의 후보는 멍청해졌고 존재감마저 흐릿해졌다. 안철수 신드롬도 일었다. 여야 모두 옹색해지기도 했다. 국민들은 어리벙벙해졌다.
그래도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당선자와 불과 5% 표차로 낙선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진짜 복지와 진짜 경제민주화의 염원이 모든 국민에게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대선 1년 전 서울시장 재선 때 일이었다. 야권의 박원순 후보와 여당의 나경원 후보의 쟁점이 바로 '복지'였다. '선별적'이니 토를 달 처지가 아니었다. 2040의 출산ㆍ육아교육ㆍ의료는 현실 문제였고 5070의 노후 역시 당면과제였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도 그랬다. 더 뭉그적거리다가는 나라경제가 주저앉거나 민심의 거센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일었다. 재벌들의 몸집은 MB정권 5년 동안 두배로 불어났다.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부의 편법확대ㆍ상속이 문제로 떴다. 그들만의 순환출자와 주식게임으로 재벌 총수ㆍCEO신분의 부당세습을 응징해야 한다는 공약이 절실했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2007년 '줄푸세(법인세 줄이고 대기업 규제 풀고 법을 바로 세운다)'에서 5년 만에 복지와 경제 민주화로 바뀐 것이었다.
체면상 줄푸세와 복지ㆍ경제민주화가 같은 선상이라고 곤궁하게 변명을 했다. 그러던 복지와 경제민주화였다. 하지만 선거 때만 좌클릭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기득권 유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재벌들의 순환출자 등에 따른 가공의결권은 논쟁자체가 사라졌다. 경제민주화 자리에는 어느 틈엔가 '경제 살리기'가 들어앉았다.
경제민주화 자리뺏은 경제 살리기
경제민주화와 경제 살리기가 반대 개념인가. 그렇다면 선거 때 외쳤던 경제 민주화는 '경제 죽이기'였단 말인가. 또 노인 모두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지급은 물 건너갔다. 70%에게만 10만원에서 20만원 차등지급으로 어물어물 바뀌었다.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5070의 반발이 일었다.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자라고 있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heaikrh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