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대한축구협회의 유임 결정 일주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박종민기자
"오늘로서 저는 이 자리를 떠나겠습니다"
홍명보 월드컵 축구 대표팀 감독이 물러났다.
홍명보 감독은 1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90년 처음 선수로 발탁돼 감독까지 국가대표로 24년의 세월을 보냈다. 때로는 격려도, 때로는 따끔한 채찍질도 해주셨는데 오늘로서 이 자리를 떠나겠다"며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홍명보 감독은 2-4로 패한 알제리전이 끝나고 처음으로 사퇴할 생각을 했고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대표팀을 향한 비난을 받는 것까지가 자기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선수단 단장을 맡았던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나 역시 책임을 통감한다"며 동반 사퇴했다.
다음은 홍명보 감독과의 일문일답.
Q. 처음 유임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 어떤 기분이었고 다시 사퇴 의사를 전한 이유는
A. 알제리전이 끝나고 사퇴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벨기에전 끝나고 말씀드렸다. 새로운 사람이 와서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팀을 만들기가 쉽지는 않았다. 내가 간단히 사퇴했다면 나 역시도 무책임한 것이라 생각했다. 6개월을 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한 선수들이 눈에 밟혔다. 여러가지 부분이 있었다.
사퇴를 결심한 것은 나의 능력을 판단했을 때, 한국에 돌아와 반성의 시간을 가졌을 때, 결론을 낸 것이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다시 선수들을 이끌 에너지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아직까지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퇴를 결심했다.
Q. 사생활 폭로가 되면서 주위에서 힘들어했을텐데 억울한 부분은 없나
A. 땅 부분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내 삶이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는 않아왔다. 훈련 시간에 나와서 그렇게 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살지는 않았다.
(회식 논란은) 벨기에전 끝나고 이과수 캠프로 돌아와서 선수들에게 이과수 폭포를 가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선수들이 더 이상 감독님께 짐을 주기 싫다고 해서 가지 않았다. 그 당시 사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패배에 대한 슬픔이 너무 깊었고 그 부분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Q. 이번 대회를 통해서 느낀 점이 있다면
A.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아시아의 모든 감독이 떨어졌는데 유임 소식을 듣고 '한국은 좋겠네, 월드컵의 자산이 남아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냐'는 편지를 받았다. 그 안에는 철저히 나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됐고 틀렸는지 어떤 점이 잘됐는가를 한국에 와서 많이 생각했다. 전술적인 부분도 잘못 됐고 선수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그런 것들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많이 잘못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이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 역시 그렇다. 내가 월드컵에서 한 모든 것들은 협회에 모두 넘기겠다. 다음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특히 나의 실패에 대해 정확히 넘길 계획이다.
Q.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리는 자리의 무게를 느꼈는가
A.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 축구는 많이 발전됐고 그 부분에 있어 선수들도 그렇고 지도자들도 많이 발전했다.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의 본질은 대표팀 감독에게는 주위 영향이 많을 것이다. 난 알고 시작한 것이다. 오랜 기간 여기 있었기 때문에 올바르게 가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좋지 않은 결과를 갖고 온 감독이기 때문에 모든 게 실패한 것이다.
Q. 향후 계획이 있다면
A.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가족들에게 가야할 것 같다.
Q. 만약 지금이 월드컵 전이라면 어떤 준비를 하겠는가
A. 월드컵 실패 원인을 찾아보니까 머리 속에 드는 하나의 생각이 내가 예선전을 거치지 않은 감독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의 장단점을, 예선을 거쳤다면 선수들의 능력을 잘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취임했을 때 팀의 골격을 내가 아는 선수로 만드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난 7월과 올해 1월 국내 선수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했는데 그 기간에 많은 것들을 비교했다. 유럽에 있는 선수들과 많이 비교해봤다. 2012년 올림픽을 다녀온 감독이기 때문에 내가 그랬기 때문에 올림픽에 다녀온 선수들을 객관적으로 놓고 평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K리그 선수들도 그렇고 모두를 평가했을 때 그들이 낫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우리에 A급 선수가 있는데 유럽에 가면 B급이 되는 선수가 있다. 과연 잘하는 선수가 유럽에 나가서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그들보다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가 경기에 뛰고 있을 때 과연 이것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지난 1월 멕시코와의 경기가 내 생각을 바꿔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 부분이 향후 한국 축구의 핵심적인 포인트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실력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재능있는 선수들은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모아 어떻게 팀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점에 대해 많이 느꼈다.
Q. '엔트으리' 논란, 알제리전 논란, 컨디션 조절 실패 논란 등 크게 세 가지가 논란이 됐다
A. 엔트리 부분에 대해서는 세상에 어떤 사람이 월드컵을 나가는 데 자기 선수들을 데리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나가겠나. 그런 감독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더 철저하게 검증했다. 더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100%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다. 그게 밖으로 좋지 않게 비쳐지는 것에 대해서는 나의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러시아전 끝나고 4일이 있었는데 이틀 정도 회복 훈련을 하고 전술적인 훈련을 한다. 선수들의 피로도를 감안해야 한다. 알제리전 비디오를 코칭스태프는 수십번 봤다. 거기서 핵심적인 상대 전술이나 주요 선수들을 선수들에게 보여줬는데 그 기간에 비디오를 2번 본다는 것은 무리였다. 지난 경기에서 무엇이 잘못됐는가에 대해서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 비디오를 먼저 보고 알제리전 비디오를 봤다. 대응에 실패했지만 비디오 횟수가 문제가 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전술에 대처하지 못한 것은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선수들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체력 수치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경기 체력이라는 것이 부족했다. 후반 들어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 역시 상대와 비교했을 때 뛰는 양이 상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Q. 축구와 관계없는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부임 후 결단을 내리기까지 가장 가슴이 아팠던 비판이나 상황이 있다면
A. 국가대표 축구 감독이라는 자리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비판이다.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1년을 되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내가 축구를 했던 시간보다는 다른 일들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선수들은 다시 팀에 돌아가서 어려운 위치에 있었지만 다 용서받고 경기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다.
Q. 컨디션 문제와 관련해 분과 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했고 전력 분석의 역할은 어땠나
A. 5월28일 경기 끝나고 다음 날 하루 쉬면서 그날 황열병 주사를 받고 30일에 떠났다. 당시 비행기를 타는 시간, 시차 적응 시간, 초반 훈련량이 많지 않다는 점 등을 충분히 감안했다. 몇몇 선수가 열이 올랐고 나 역시도 열이 조금 올랐지만 하루 일찍 휴식을 취해서 그 문제를 바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 편차는 조금 있었을 것이다.
안툰 코치와 기술 분과위원회에서 우리에게 준 자료는 굉장히 좋았다. 6월 전지훈련 기간에 두 명의 전력분석 코치는 조별리그 상대팀의 전력분석을 하고 있었다. 그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충분히 만족했다.
Q. 지난 주 사퇴 의사를 접고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맡기로 하다가 갑자기 사퇴를 하게됐다. 어떤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나
A. 내가 처음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내 명예는 다른 곳에서 얻은 게 아니라 축구에서 얻은 것이라고 얘기했다. 따라서 축구에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다. 축구 인생에서 성실하게 늘 최선을 다했다.
처음 사퇴 생각을 하다가 정몽규 회장님과 면담을 했다. 명예 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시기에 선수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에 수락을 한 것이다. 사퇴 부분에 있어서 내가 과연 6개월 잘 갈 수 있을까 생각도 했다. 솔직히 그랬다. 1년도 잘 못했는데 과연 6개월을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24년동안 있다 보니까 조금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그럴 에너지가 있을지도 생각해봤다. 앞으로 모든 것이 아시안컵까지 가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Q. 감독을 더 이상 안하겠다는 느낌을 준다. 어떤가
A. 선수도 코치도 감독도 해봤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탤런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축구에 대한 부분이다. 앞으로도 그동안 해왔던 사회 활동을 많이 해야하고 주위 어려운 사람도 도와야 한다.
여담이지만 미국 대통령 중 재임 기간 중 가장 역할을 하지 못한 감독이 지미 카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임기 이후에 미국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도 지미 카터 대통령이다. 축구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항상 머리 속에 새기면서 축구를 해왔다. 지도자 생활도 해왔다. 그 부분은 앞으로도 내가 계속 가져가야 할 부분이다.
나도 24년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분이 좋다. 대한민국을 위해 많은 성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