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주(62) 동국제강 회장.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굵직한 사건의 중요 피의자들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잇따라 기각하자 법원과 검찰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구속영장 발부 요건이 까다로운 법원이 최근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수사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고, 법원은 법리적 해석에 기초한 순수한 판단일 뿐이라며 성급한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이같은 법원과 검찰의 '묘한 신경전'은 지난달 28일 회삿돈으로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청구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당시 해외에서 자재 대금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회삿돈 200억여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도박에 사용한 혐의로 장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일부 혐의에 관한 소명 정도, 현재까지의 수사경과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즉각 "유전불구속 무전구속"이라는 말까지 내놓으며 거세게 반발했고, 장 회장을 다시 불러 조사한 뒤 영장을 재청구를 해 결국 구속했다.
잠시 활력을 띄는 듯 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는 이후 특수2부의 '포스코 비리 의혹'을 풀 핵심 인물인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특수1부의 '금융감독원 경남기업 특혜의혹'의 '키맨'인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에 대한 영장이 각각 기각되자 동력을 크게 상실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검찰 일각에서는 "괜히 법원을 건드려 보복성 영장 기각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는 해석마저 나오고 있다. 장세주 회장 영장 기각 직후 내놓은 "유전불구속" 멘트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법원이 괜히 중요 피의자들에 대해 기각을 하고 있겠느냐. 법리적 판단도 판단이겠지만 괘씸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내놓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영장 기싸움에 중간에서 기각 성과를 올린 변호사만 피의자들로부터 사례금을 받아 많게는 수억원의 이득을 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법원은 보복성 영장기각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낭설"이라며 선을 긋는 모습이다. 법관은 '증거인멸의 우려, 도주 우려, 사안의 중대성 등 크게 3가지 기준에 따라 법리적 해석을 할 뿐, 의도성을 가지고 영장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원칙적 답변인 것이다.
오히려 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이라는 돌발 변수로 리스트 수사에 돌입하면서, 추가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다른 특수부 수사들에 무리하게 속도를 낸 것이 잇따른 기각 배경이라는 이야기도 내놓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유전불구속 같은 말을 내놓는 검찰이 비난의 주체이지 법원은 아무 행동이나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며 "검찰이 시간적 여유 없이 결과를 내놓기 위해 수사를 하다 보니 기각이 된 것이지 법원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부실수사 때문에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그 책임을 법원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검찰과 법원이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검찰 내부에서는 차라리 영장 발부 기준을 정형화 하자는 목소리와 함께 수사 동력 확보 차원에서 구속 기준을 낮추자는 주장도 나온다.
명확한 기준이 없고 영장전담 판사 개개인의 판단에만 맡기다 보니, 탄력을 받고 진행돼야 할 수사가 번번히 막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통상적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비율은 75~80% 가량이고, 4건 가운데 1건은 기각된다는 통계도 근거로 든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의 양형위원회처럼 구속영장에 대한 발부기준을 논의하는 주체를 마련해 발부 기준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법원도 이제 통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현행 구속 영장 발부 기준은 너무 엄격해 마치 재판과 같은 게 사실"이라며 "수사필요성이 인정될 경우에 한해 구속 요건을 완화해 수사 동력을 확보하게 해 주고, 남발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는 구속적부심이나 보증금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구속영장 발부 형태로는 아랫 사람들만 지시를 받고 따르다 구속되고, 윗 사람들은 지시 정황이 명확지 않아 빠져나가는 '유전불구속 무전구속' 형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