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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무심코 던진 돌'에 프로농구 다 죽습니다

    [임종률의 스포츠레터]

    '이러다 다 죽는 건가요?'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혐의로 경찰이 구속 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돼 검찰로부터 불구속 수사를 받게 된 전창진 KGC인삼공사 감독(오른쪽)과 공모 혐의로 지난 21일(한국 시각) 경찰의 추가 소환 발표에 대해 심경을 밝히고 있는 문경은 SK 감독.(자료사진=윤성호 기자, 사진공동취재단)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2015 프로농구(KBL) 외국 선수 트라이아웃 & 드래프트' 취재를 위해서였습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 선수 선발은 사실상 한 시즌 농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만큼 10개 구단 감독과 코칭스태프, 관계자들은 일찌감치 미국 현지에 도착해 면밀하게 선수들을 점검하고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신장 제한이 부활하는 등 한국농구연맹(KBL)이 의욕적으로 제도를 바꾸면서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드래프트였습니다. 외인 2명 중 193cm 이하 선수 1명을 무조건 뽑아야 하는 데다 4라운드부터 2, 3쿼터에 2명을 출전시킬 수 있는 규정이 생겨 각 팀의 셈법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선수들이 기량을 뽐낼 트라이아웃이 진행되면서 22일(한국 시각) 드래프트를 앞두고 현지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습니다.

    하지만 드래프트 전날인 21일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바로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전창진 KGC인삼공사 감독에 대한 경찰의 구속 영장 신청 발표였습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 감독에 대해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22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 시즌의 거사인 드래프트를 코앞에 두고 터진 청천벽력이라니…. 더욱이 구속 영장이 신청될 22일 외인 선발 당일이었습니다. 드래프트 직전 한국에서 날아온 소식은 모처럼 농구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드래프트 현장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이거 신경쓰기도 모자랄 판에...' KBL 감독과 코치 등 각 구단 관계자들이 21일(한국 시각) 외국인 트라이아웃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는 모습.(라스베이거스=사진공동취재단)

     

    여기에 전 감독보다 인지도가 높은 '람보 슈터' 문경은 SK 감독까지 승부 조작 공모 혐의로 추가 조사가 검토 중이라는 소식에 현지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한 감독은 "정말 이런 상황에서 드래프트를 해야 하는 건가?"라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사자인 문 감독은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습니다. 드래프트 전략을 짜야 할 전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모양새였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저녁 무렵 소식을 접한 문 감독은 구단 관계자들과 대책 마련에 부심했습니다.

    문 감독은 자정 무렵이 돼서야 이뤄진 현지 KBL 기자단과 인터뷰에서 "이미 조사한 내용이고 결백한 상황인데 이런 소식이 나와 화도 나지 않는다"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어 "선배인 전 감독과 경기 전날 안부 전화를 너무 오래(13분여) 했다는 게 문제라고 하더라"면서 "나 때문에 드래프트에 영향을 줄까 걱정"이라고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모 감독은 "전 감독과 친하고 연락한 사람들은 다 조사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진행된 드래프트는 제대로 분위기가 오를 리 만무했습니다. 김영기 총재를 비롯해 KBL 관계자들의 표정은 무거웠고, 각 구단 감독들과 관계자들도 말을 아꼈습니다.

    특히 문 감독은 1라운드 전체 2순위, 상위 순번이 뽑혀 데이비드 사이먼(203cm)이라는 수준급 선수를 뽑았음에도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습니다. 문 감독의 연세대 후배 이상민 삼성 감독도 1순위로 최고 외인 리카르도 라틀리프(199.2cm)를 선발했지만 표정 관리를 해야 했습니다. 사실상 2015-2016시즌의 시작인 외인 드래프트는 그렇게 무겁게 막을 내렸습니다.

    '웃을 기분 아니에요' 문경은 SK, 추승균 KCC, 이상민 삼성(왼쪽부터) 감독이 22일(한국 시각)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으로 뽑힌 뒤 휴식 시간에 잠시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모습.(라스베이거스=사진공동취재단)

     

    경찰 수사에 대해 딴지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엄정한 국가기관의 사법권과 활동은 독립적으로 존중돼야 마땅합니다. 그동안 경찰 수사에 혹여라도 영향을 미칠까 관련 기사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작성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아예 사회부, 중부서 출입 기자에 맡기자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이번 구속 영장 신청을 뒤늦게나마 다루는 것은 그 시기의 아쉬움 때문입니다. 영장 신청의 가부가 아니라 시기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입니다. 기왕 결정된 영장 신청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왜 하필 드래프트 당일이냐'에 대해서는 진한 여운이 남는 겁니다.

    사실 드래프트에 앞서 KBL은 중부서 측에 영장 신청의 시기에 대해 의견을 전했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신청이 이뤄진다면 드래프트를 마친 다음이었으면 한다는 겁니다. 구속 영장 신청 자체가 아니라 시기에 대한 조절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속 영장 신청은 KBL의 의사 타진이 무색할 만큼 한치의 오차도 없이 22일 이뤄졌습니다. 일단 드래프트를 무사히(?) 치를 환경을 만들어내지 못한 KBL의 행정력도 짚어볼 부분입니다. 과연 여당 국회의원인 전임 한선교 총재였다면 경찰의 영장 신청이 그대로 진행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 대목입니다. 현 김영기 총재는 드래프트 당일 "경찰 쪽에 구속 영장 신청을 연기해 달라는 의사를 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이번 구속 영장 신청은 현 KBL 상황에 대한 배려가 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KBL은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전 감독이 승부 조작에 연루됐다는 지난 5월 경찰 발표로 큰 충격을 입었습니다. 2년 전 강동희 전 동부 감독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일각에서는 리그 존폐까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열린 드래프트는 모처럼 가라앉았던 농구 열기를 되살릴 호기였습니다. 하지만 외인 선발은 전 감독에 대한 구속 영장 신청과 문 감독의 추가 조사 발표로 완전히 분위기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우울한 잔치로 끝난 드래프트였습니다.

    김영기 KBL 총재(아랫줄 가운데)가 22일(한국 시각) 외국인 드래프트에 선발된 선수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라스베이거스=사진공동취재단)

     

    물론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얘기는 다릅니다. 증거 인멸과 도주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하시라도 영장이 발부돼야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그렇게 다급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전 감독이 먼저 조사를 받겠다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경찰에 출두하기도 했습니다. 경찰 측은 "지인과 선수 등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한 상태에서 전 감독을 소환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영장 신청이 하루 미뤄졌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까"라는 말은 농구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입니다.

    더욱이 경찰의 구속 영장 신청은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영장을 발부하는 법원까지도 가지 못했습니다. 경찰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이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검찰의 내부 사정이 있었겠으나 법원의 판단조차 받지 못한 구속 영장. "이럴 거였으면서 왜 하필 드래프트 때 영장 신청을 했나"라는 농구계의 허탈한 탄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시금 언급하지만 경찰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혐의가 있으면 철저하게 수사해 진실을 밝히는 게 대한민국의 정의일 겁니다. 그러나 법에도 눈물은 있는 겁니다. '강철로 된 무지개'처럼 너무나 엄혹한 수사 현실에 불의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농구계에는 이번 승부 조작 혐의 수사 때 한 경찰 관계자가 했다는 "전창진 감독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었나요?"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KBL 최고 명장의 인지도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씁쓸함과 수사를 담당할 주체의 농구에 대한 무관심이 동시에 읽히는 대목입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KBL의 한 베테랑 감독은 "이러다 프로농구가 다 죽는 게 아니냐"고 하소연합니다. 사법권의 집행은 엄정하게 이뤄져야 하고 진실은 끝까지 밝혀져야 하는 게 맞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도록 막지 못한 KBL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으나 법에도 다시 일어설 안간힘까지는 무심코 뿌리치지 않을 품은 있을 겁니다.

    '이제 곧 최강전' 지난 1일 2015 프로-아마 최강전 대진 추첨을 앞두고 이성훈 KBL 사무총장이 인삿말을 하는 모습.(자료사진=KBL)

     

    영장 기각이 전 감독의 무혐의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검찰이 바통을 넘겨받아 전 감독에 대한 수사를 구속이 아닌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할 겁니다.

    그 사이 농구계는 다음 달 8월 15일 '2015 프로-아마 최강전'을 펼칩니다. 9월 12일 개막하는 2015-2016시즌의 전초전이겠죠. 최강전에 앞서 승부 조작과 관련해 KBL 감독들과 선수들의 대국민 사과도 예정돼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간절한 뜻까지 무심코 꺾이는 일이 또 다시 벌어지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p.s-농구계는 전 감독과는 별개로 전, 현 선수에 대한 수사 태풍을 앞두고 있습니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사이버수사대가 진행 중인 수사입니다. 현역 선수 A와 은퇴한 전 선수 B 등이 상무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사이버수사대는 KBL의 요청으로 외국인 드래프트 기간을 피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후문입니다. 만약 전 감독의 구속 영장 신청에 선수 수사 발표까지 났다면 정말 드래프트는 엉망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농구계에서는 드래프트가 끝난 이번 주 안에 수사 발표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드래프트 이후 경찰과 또 검찰의 수사가 어떤 결론을 맺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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