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도심이 뿌연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윤성호 기자)
매마른 나뭇잎 위에 하얀 먼지가 뿌옇게 쌓였다.
건조한 공기 탓에 가습기를 틀어 놓은 상점들도 눈에 띈다.
도심의 시민들은 마스크를 쓰거나 스카프와 옷깃으로 입과 코를 감싼 채 걸음을 재촉했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최근 수분팩을 하는 습관까지 들였다는 강덕구(29)씨는 "비가 많이 안 와서 미세먼지가 많아 숨 쉬기가 곤란하다"며 코를 훌쩍였다.
중부 지방과 농가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저수지 저수율은 전국 평균 45%에 불과한 채로, 충남 지역의 경우 저수지 저수율은 평년치(76%)에 턱없이 모자란 32%에 머물고 있다.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충남 서해안 일대엔 제한급수가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벼농사를 짓는 정정자(78·여)씨는 "농사짓는 사람은 언제든지 물이 풍족해야 하는데, 물이 적어서 걱정"이라며 "비가 많이 와서 땅에 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는 24일 무렵엔 서울과 강원 영서 지역에 0~4mm의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지만 가뭄 해소에는 거의 도움이 안되는 수준이다.
유례없는 가뭄 탓에 한강 본류 전역에 녹조가 창궐한 가운데 19일 서울 양화대교 밑 한강에 녹조가 뒤덮여 있다. (사진=박종민기자)
◇ 기상 이변 '엘니뇨'에 바싹 마른 가을하늘물이 없어 난리인 상황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태평양 지역 담당 순 구드니츠는 최근 "태평양 지역에 최대 410만 명이 물 부족, 식량 불안정, 질병 등의 위험에 놓여있다"고 경고했다.
핵심 이유의 하나로는 엘니뇨가 꼽힌다.
적도 부근 무역풍의 약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해 기상 이변을 일으키는 엘니뇨 현상이 퍼지면 태평양 동쪽엔 폭우와 홍소, 태평양 서쪽엔 가뭄이 나타난다.
지난 1997년과 이듬해에 이어진 엘니뇨로 전세계에서 2만 3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올해는 이를 능가하는 역대 최고 수준의 '슈퍼 엘니뇨'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하늘에서 물을 구경하기 힘든 우리나라 현실의 배경에도 엘니뇨가 있다.
이화여대 최용상 대기과학공학과 교수는 "현재 엘니뇨가 나타나는 시기이고, 이 때는 통상적으로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가 건조해진다"며 "앞으로 엘니뇨는 더 강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기상청 김용진 사무관도 "여름철엔 엘니뇨 영향 속에 장마전선이 주로 남쪽에 형성돼 강수량이 적었고, 가을에는 고기압 영향으로 특히 중부지방에 비가 적었다"면서 "올해는 중부지역에 태풍도 거의 오지 않아 강수량이 더 적은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 일찍 찾아온 불청객 '미세먼지'
이런 가운데 중국발 미세먼지는 예년보다 10일가량 먼저 찾아왔고, 미세먼지 농도도 지난해에 비해 삼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10월의 경우 인천 지역에서만 단 한차례의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지만, 올해는 지난 16일부터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을 비롯해 강원과 충북 등 전국적으로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원대 이종범 환경학과 교수는 "공업화가 상당히 진행돼 오염이 심한 상하이나 산둥반도, 북경에서 발생한 먼지가 남서풍을 타고 국내로 유입된다"며 "남서풍 자체가 바람이 약하고, 또 바다를 건너면서 습해지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미세먼지 현상이 심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또 땅은 물론 대기도 건조하게 만든 가뭄은 잿빛 하늘을 더 뿌옇게 만들고 있다.
최근엔 지난 11~12일 사이 중부지역에 5~10mm 안팎의 빗줄기가 내려진 게 전부여서 미세먼지가 씻겨지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