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의 징계는 타당성을 갖췄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각심'이라는 단어가 빠졌다 (사진 제공/KBL)
2015-2016시즌 프로농구 개막을 앞두고 농구계를 강타했던 불법 스포츠 도박 파문이 일단락됐다.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왔고 이에 맞춰 KBL도 징계안을 내놓았다.
KBL이 29일 발표한 재정위원회 심의 결과를 보면 안재욱, 이동건(이상 원주 동부), 신정섭(울산 모비스) 등 프로농구 선수가 된 이후에도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3명은 제명 조치됐다.
반면, 대학 시절에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고 KBL 등록선수가 된 이후에는 하지 않았던 나머지 9명은 제명을 피했다. 출전정지와 벌금, 사회봉사의 제재가 이뤄졌다.
그 중에서도 검찰로부터 약식기소된 전성현(안양 KGC인삼공사)은 54경기 출전정지(벌금 250만원, 사회봉사 120시간)를 받았고 김선형(서울 SK)과 오세근(KGC인삼공사) 등 기소유예를 받은 선수들은 일괄적으로 20경기 출전정지에 연봉에 따른 벌금, 120시간의 사회봉사 징계안을 받았다.
이들은 11월 중순부터 출전이 가능하다. KBL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들에게 기한부 출전 보류를 걸었다. KBL은 지금까지 출전하지 못한 경기수를 포함, 소급 적용해 징계 기간을 정했다. 팀당 14~17경기를 치렀기에 이제 3~6경기 후에 이들의 복귀가 가능하다.
◇KBL의 징계는 가벼운가? 무거운가?KBL이 경찰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혐의를 받은 11명의 선수에게 기한부 출전 보류를 걸기로 결정한 것은 시즌 개막을 4일 앞둔 9월8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선수에게 징계를 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KBL은 여론과 농구계 분위기를 반영했다. 이미 몇년전부터 승부조작 파문으로 인해 멍들었던 프로농구다. 단호한 조치가 필요했다. KBL의 과감한 결단을 두고 잡음은 크게 없었다.
11명의 선수에게 기약없는 징계가 내려졌다. 모두 10경기 이상 뛰지 못한 시점에서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가 나왔다.
20경기 출전정지가 많고 적고를 떠나, KBL이 징계 기간을 개막 첫 날로 소급 적용한 것은 타당해 보인다. 기한부 출전 보류 자체가 결코 가벼운 징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20경기 출전정지는 설득력을 얻을만한 수준의 징계인가? KBL은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기와 장소를 불문하고 불법도박에 가담한 경우 일벌백계 해야 옳지만 불법도박의 위험성과 폐해에 대한 교육과 이해가 부족한 시기에 횟수나 규모가 적은 점을 감안해 선수들의 장래와 한국농구의 발전을 위해 이번에 한해서 코트로 복귀해 팬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KBL은 적어도 해당 선수들에게 일벌백계를 내리지는 않은 것을 인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일벌백계는 한 시즌 출전정지 혹은 더 나아가 제명을 뜻할 것이다.
프로에 와서도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선수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학 시절에는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지만 프로에 입성한 뒤에는 불법 행위를 끊은 선수에 대해서만큼은 KBL이 중징계를 내릴 명분이 사실 크지는 않다. 프로 선수가 된 이후에는 적어도 리그와 구단의 품의 손상을 야기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사법 처리는 검찰이 했다. KBL은 사법기관이 아니다.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그들에게는 기한부 출전 보류 기간에 3-6경기의 출전정지를 더했고 벌금, 사회봉사를 포함해 최종 징계를 내렸다. 적어도 프로 선수가 된 이후에는 프로 선수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일벌백계'를 내렸다가는 또 다른 논란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KBL의 이번 징계안에는 최소한의 타당성은 있다.
◇2% 부족한 KBL의 발표KBL은 보도자료 마지막에 "이번 징계 조치 이후 발생되는 KBL 관련자의 불법도박 및 사행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할 예정이며 관련 상벌규정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KBL은 유관 단체 및 기관과 협력을 통해 근절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예정이고 계획이고 또 예정이다. 만약 KBL이 말하는 무관용의 원칙이 무엇이고 관련 상벌규정을 어떻게 대폭 강화할 것인지를 함께 밝혔다면 어땠을까.
KBL이 이번 징계안을 심의하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불법 스포츠 도박을 일삼다가 프로에 진출하는 아마추어 선수가 앞으로도 나올 수 있다. 누군가는 지금도 하고 있을지 모른다. KBL은 이번 징계를 통해 그들에게도 경각심을 줘야 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마음껏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다가 프로 선수가 될 때부터 끊어야지", 관계자들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봐 걱정했고 걱정하고 있다.
만약 지금 이순간 불법 스포츠 도박에 중독된 어떤 아마추어 선수가 20경기 출전정지에 벌금과 사회봉사 정도만 받으면 프로선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번 KBL의 제재는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KBL이 해당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발표함과 동시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응책을 함께 마련하기를 기대했다.
뒤늦게 대학 시절에 불법 스포츠 도박 행위가 밝혀진 선수가 나오면 KBL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불법 스포츠 도박 파문이 일어난 올해 9월는 중요한 기점이 될 수 있다. 올해 9월 이후 불법 행위에 발을 담그는 아마추어 선수가 있다면 일벌백계도 가능하다. 그런 선수가 나온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보이지 않는다.
{RELNEWS:right}KBL은 지난 26일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선발된 신인선수들을 대상으로 다음날 오리엔테이션을 개최했다. 그러나 KBL은 그들에게 형식적으로나마 과거 불법 스포츠 도박 경험의 유무를 묻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KBL은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까지는 기준을 정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KBL은 하루빨리 약속을 지켜야 한다. 관련 상벌규정을 어떻게 강화할 것이고 어떤 근절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를 논의해 공개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번만 잘 넘기자고 스스로 위안하는 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