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등 박근혜 대통령의 10일 국무회의 발언이 정치권에 ‘총선 심판론’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박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민생’의 취지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
더욱이 국정의 선두에서 '민생'을 챙겨야 할 최경환, 황우여, 김희정 등 정치인 출신 장관들을 당에 복귀시키는 박 대통령의 2차, 3차 총선용 개각이 예정돼 있어 '진실한 민생 챙기기'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요약하면, 첫째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동개혁입법과 경제활성화법안 통과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둘째 (정치권이) “매일 민생을 외치고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치적 쟁점과 유불리에 따라 모든 민생 법안들이 묶여있는 것은 국민과 민생이 보이지 않는다는 방증”이며, 셋째 “국민 여러분께서도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 주시고,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중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한 대목은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국민 심판론’으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이 국회, 즉 여야 모두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국민 심판론은 단지 야당만이 아니라 여당 내 비박계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여당 의원에 대한 심판이라고 한다면 결국 정부 내각의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 등 박 대통령의 사람들이 내년 총선을 위해 몰려들고 있는 대구 경북지역의 물갈이설과 연결될 수 밖에 없는 맥락이다.
박 대통령이 여야 정치권을 비판하는 핵심 근거는 바로 ‘민생’이다. 경제 살리기와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민생을 위해서는 관련 법안의 처리가 필수적인데, 여야 정치권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여야 5자회동, 국회시정연설과 같은 기회를 통해 민생을 근거로 경제 활성화 법안 통과와 노동개혁 입법, 한·중 FTA 비준 처리 등을 국회에 요청했는데, 이번에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 심판론’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국민에 직접 호소하며 국회를 압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정말 민생을 살리고, 계류 중인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최대 목표라면, 국무회의에서 국회에 비난을 퍼부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야당 대표를 만나 담판을 지어야 가능할 것이고, 이런 것이 바로 정치”라고 말했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안타까움과 간절한 호소는 이해간다고 해도, 3권 분립의 원칙 측면에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입법부를 압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대통령의 압박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정치권이 흔쾌히 협조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여야 정치권의 대립이 격화되는 와중에서 민생이 실종되는 데는 박 대통령이 제기한 이슈도 한 몫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바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다.
최창렬 교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명백히 청와대에서 먼저 시작한 것으로, 박 대통령의 문제제기 이후 거의 20여 일 동안 여야 대립 속에 사실상 민생이 실종됐다”며 “그런데도 정부의 확정 고시가 이뤄졌다고 해서 청와대와 여당이 갑자기 민생으로 돌아가자고 야당을 압박한다면, (야당으로서는)협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정치권 비판이 사실상 ‘총선 국민 심판론’으로 해석되면서, 박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민생’도 갈수록 호소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민생을 근거로 정치권을 압박하고 비판하는 것이 TK 지역 의원들의 물갈이 등 대통령의 총선 개입으로 수렴되는 것이라면, 박 대통령이 평소 강력 비판하고 있는 ‘자기 정치’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