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제공)
연말 각 방송사에서 여는 이런저런 시상식의 추락한 권위를 새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식 밖의 '식구 챙기기' '나눠 먹기' 시상식에 굳이 3시간이 넘는 소중한 방송 시간을 할애할 이유가 있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지난 29일 밤 8시 55분부터 3시간 30분가량 방송된 '2015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주어진 상의 개수는 30여 개. 수상자는 한 상에 보통 한둘, 많게는 세네 명이었으니 50명을 훌쩍 넘긴 셈이 됐다.
수상자가 많았던 탓에 3시간 30분이라는 적잖은 방송 시간은 여유 없이 긴박하게 흘러갔다. 방송 내내 가장 많이 들린 말은 "빨리빨리"였다. 무대에 오른 시상자들은 "준비해 온 것은 많지만, 빨리빨리 진행하라니 그냥 넘기겠습니다"라고 했다.
호명된 수상자들 역시 약 1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빨리빨리' 수상 소감을 전해야 했고, 시간을 넘기면 어김없이 커다란 음악 소리에 목소리가 묻히는 수모를 당했다. 그렇게 시상자와 수상자가 준비해 왔을 유머와 감동의 멘트는 속도전에 밀려 빛이 바랬다.
3시간 30분이라는 방송시간이 부족했던 이유는 상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보통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신인상으로 구분되는 시상식의 기본 형식을, MBC 방송연예대상은 변칙적으로 활용했다.
TV 부문과 라디오 부문을 나눈 것은 매체의 특성상 납득이 가지만, TV부문을 다시 버라이어티와 뮤직·토크쇼 부문으로 나눈 것에서는 다분히 수상자 수를 늘리려는 꼼수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 각 부문별로 인기상을 추가하고 '뉴스타상' '특별상' 등 정체성이 모호한 상을 억지로 욱여넣으니 상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수상자들조차 "상이 좀 많은 것 같다" "후보에 이름이 없었는데, 이 상 주려고 그러셨군요"라며 편하지만은 않았을 속내를 드러냈다.
'욱여넣기' 시상의 정점을 찍은 것은 '가수 인기상'이었다. '예능인들을 위한 시상식에 왜 가수 인기상이 있을까'라는 의문은 사회자의 멘트를 듣고는 이내 풀렸다.
이날 가수 인기상은 엑소에게 돌아갔다.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마친 엑소에게 사회자는 "내년에는 엑소를 예능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결국 "내년에 MBC 예능에 많이 출연해 달라"는 당부의 의미로 상을 준 셈이다.
MBC 측은 '일밤-진짜 사나이2'와 관련해 사전 시상식을 갖고 육군, 해군, 해병대에게도 각각 '공헌상'이라는 이름의 상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