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A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며칠 전 휴대전화가 걸려 왔는데, 4·13 총선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B후보자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묻는 자동응답(ARS) 전화였다. 그런데 B후보자의 지역구는 서울 강남구였다.엉뚱한 지역의 유권자에게 여론조사를 한 셈이다. A씨는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한다고 허위로 응답한 뒤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같은 방식의 여론조사는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경선 제대로 하려면 ‘안심번호’ 도입 필수”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A씨가 겪은 ‘여론조사 오류’ 원인에 대해 “무작위 휴대전화 여론조사(RDD) 방식으로 걸려왔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됐거나 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제대로 표본을 확정하지 않고 돌린 ‘엉터리’ 조사란 얘기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론조사가 단순 지지도 조사 목적을 넘어 정당의 총선 공천자를 결정하는 ‘경선’에 활용된다는 사실에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유선전화 여론조사가 한계에 봉착해 휴대전화 조사가 도입됐는데, 휴대전화 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안심번호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 전화를 없애는 추세고 설령 통화가 되더라도 대부분의 응답자가 높은 연령층이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활용해야 하지만, 휴대전화의 경우 개인정보 보호에 의해 명의자의 거주 지역을 특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화면접이 아닌 ARS의 경우 연령과 성별까지 조작할 수 있다.
지난달 대구지역 모 후보자의 경우 20~30세 연령대의 여론조사 웅답자에 가중치가 부여되는 점에 착안해 ‘허위 응답’을 종용했다가 논란이 됐다. 유선전화 여론조사의 경우 착신전환이 가능한 점을 역이용해 ‘번호 매수’에 의한 ‘여론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점도 문제다.
광역자치단체장 경선에 출마했던 한 인사는 "지역에서 300명만 모집해서 유선전화 앞에 대기시켜 놓으면 경선 결과를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다"며 여론조사의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총선 경선의 경우 휴대전화 가입자의 개인정보와 매칭이 되는 안심번호 제공을 법제화 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신설된 공직선거법 57조 8에 따르면 “당내 경선을 위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정당은 이동통신사업자에게 전화번호가 노출되지 않도록 생성한 번호(안심번호)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때 유권자의 성(性)·연령·지역 정보가 함께 제출된다.
안심번호가 도입되면 경기 거주자에 서울 출마자의 ‘지지’ 여부를 묻거나, 연령 조작이나 동원에 의한 ‘여론 조작’이 불가능해 지는 셈이다.
◇與 ‘안심번호’ 연일 격론…친박 “시간·비용 큰 실험” vs 비박 “정확한 샘플링 가능”
하지만 새누리당의 경우 안심번호제 법제화에 동의해 놓고도 ‘도입’ 여부를 놓고 연일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친박계 유기준 의원은 “이상적인 제도이긴 하지만, 많은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일반 유선전화의 2~3배로 알려졌다”며 “도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난색을 피력했다.
친박계의 주장은 표본 추출과정에서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2월쯤 실시되는 당내 경선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