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직 할 게 많습니다' 삼성 이승엽이 2일 두산과 홈 경기에서 3회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팀 1호 홈런을 날린 뒤 동료와 기쁨을 나누는 모습.(대구=삼성)
역시 삼성의 역사에 또 이름을 올린 선수는 '라이언킹' 이승엽(40)이었다. 대구 신축구장의 삼성 선수 1호 홈런을 날리며 위기의 팀을 구했다.
이승엽은 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두산과 홈 경기에 5번 지명타자로 나와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1타점 1볼넷 2득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10-6 승리를 이끌었다. 전날 공식 개막전 및 라이온즈파크 첫 공식 경기 1-5 패배의 아쉬움을 날렸다.
살아있는 전설답게 또 다시 홈런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바로 라이온즈파크에서 터뜨린 삼성 선수의 첫 홈런이다. 전날 첫 경기에서 개장 1호 홈런이 나왔지만 상대팀인 두산 양의지였다. 양의지 본인도 "내가 삼성 소속이 아니라 큰 의미는 없다"고 멋쩍게 말할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삼성의 자존심을 살린 선수가 이승엽이었다. 3회 1사에서 이승엽은 두산 선발 유희관의 시속 120km 가운데 몰린 투심을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3-2로 불안하게 앞선 가운데 나온 통렬한 비거리 125m 아치였다.
류중일 감독은 물론 대구 팬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삼성 선수의 개장 1호 축포였다. 그 주인공이 이승엽이라 더 뜻깊었다. 이승엽은 한 시즌 최다 홈런(2003년 56개)과 통산 최다 홈런(417개) 등 한국 프로야구 홈런 역사의 기록 제조기다. 그런 이승엽이 역사적인 라이온즈파크의 삼성 선수 첫 아치를 그린 것이다. 전날도 이승엽은 개장 1호 타점을 올렸다.
홈런에 앞서도 이승엽은 1회 안타를 뽑아낸 뒤 득점까지 기록하며 초반 기선 제압에 힘을 보탰다. 양준혁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1299득점)에 이어 통산 두 번째로 1200득점 고지를 밟았다. 최고참의 분전에 고무된 삼성은 장단 16안타를 몰아치며 10-6 승리를 거뒀다.
'역시 대구의 사나이' 삼성 이승엽(가운데)이 2일 두산과 홈 경기에서 상대 선발 유희관(왼쪽)으로부터 홈런을 뽑아낸 뒤 김평호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대구=삼성)
경기 후 이승엽은 개인 기록보다 팀 승리에 더 기뻐했다. 개장 첫 삼성 선수 1호 홈런 소감에 대해 이승엽은 "잘 모르겠다"고 웃으면서 "홈런을 쳤는데 이겼으니까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좋은 야구장에서, 또 대구에서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하는 게 처음인데 경기하는 자체가 행복하고 될 수 있으면 많이 이겨서 오시는 분들께 재미를 주고 싶다"면서도 자신의 통산 1200득점에 대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날 삼성은 리드를 잡았지만 5회 4-4, 8회 5-5 등 동점을 허용하는 등 고전했다. 만약 졌다면 개막 2연패였다. 이에 대해 이승엽은 "다행이다. 정말이다. 또 지면 어쩌나 걱정했다"면서 "오늘도 많은 관중 앞에서 지게 되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다행히 역전승해서 야구를 재미있게 했다"면서 "경기하는 사람은 피가 마르지만 보는 사람은 재미있는 야구를 했을 거라 생각하고 이겨서 진짜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걱정이 많다.
삼성은 통합 4연패에 이어 정규리그 5연패를 이룬 지난해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거포 야마이코 나바로와 박석민이 각각 일본 지바 롯데와 NC로 이적했다. 타선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 속에 이승엽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지난해 진갑용(42)이 은퇴하면서 이승엽은 팀의 최고참이 됐다. 주장은 박한이(37)지만 팀의 정신적인 지주는 이승엽이다.
이승엽은 "나바로와 박석민은 분명히 좋은 선수들"이라면서 "하지만 남은 선수들이 힘을 내고 새로 온 아롬 발디리스와 백상원이 잘 해준다면 더 짜임새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선수들 역할 더 커졌고,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역사에 남을 스윙' 삼성 이승엽이 2일 두산과 홈 경기에서 3회 솔로 홈런을 날리는 모습.(대구=삼성)
수비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주축 투수 3인방인 윤성환과 안지만, 임창용이 도박 스캔들로 빠진 상황이다. 벌금형을 받은 임창용은 KIA로 이적한 가운데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나머지 2명은 논란 속에 아직 1군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최고참 이승엽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이승엽은 이날 접전에 대해 "아, 정말 힘드네요"라고 운을 뗐다. 이어 "수비할 때는 (지명타자라) 못 나가니까 벤치에서 (동료들이) 막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먹는 수밖에 없다"고 애가 탔던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윤성환, 안지만의 부재에 대해 "모든 선수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막고 복귀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봤다. 이승엽은 "둘이 돌아오면 우리 팀은 더 강해진다"면서 "그때까지 버텨내야 한다"면서 "프로는 1등이죠. 1등을 하도록 해야죠"라고 강조했다.
이런 위기일수록 빛나는 선수가 이승엽이다. 이승엽은 개막 1, 2차전에서 7타수 3안타 2타점을 올렸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복귀하고 5년째인데 개막 2경기에서 3안타에 장타도 나오고 가장 좋은 페이스"라면서 "스프링캠프 때 좋았다가 시범경기에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개막전에서 조금 올라와서 올 시즌이 긍정적일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팀 전력 공백이 있는 만큼 페이스를 끌어올려야 할 책임이 있다. 이승엽은 "내가 좋은 안타와 타점을 많이 올려줘야 팀이 승리한다"면서 "타율 3할 30홈런 100타점이 목표지만 팀이 승리하는 데 결승타도 많이 치고 싶다"고 시즌 각오를 다졌다. 벌써 프로 데뷔 22년째, 우리 나이로 41살인 이 베테랑의 인터뷰 마지막 말은 "할 게 많습니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