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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스포츠레터]김재환의 진심 "약물 꼬리표요? 땀으로 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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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률의 스포츠레터]김재환의 진심 "약물 꼬리표요? 땀으로 뗄 수밖에…"

    '땀보다 확실한 약은 없다' 김재환은 올 시즌 맹활약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속으로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고 밝혔다. 타격의 모든 부분을 바꿀 만큼 큰 모험을 걸었던 김재환은 스프링캠프부터 코칭스태프와 함께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왔다.(자료사진=두산)

     

    두산이 해냈습니다. 21세기 들어 첫 정규리그 우승. 가장 마지막이자 구단 사상 최초가 1995년이었으니 무려 21년 만입니다. 1982년 프로 원년에도 우승을 했지만 당시는 전, 후기 리그로 나뉘었던 때라 엄밀히 따지면 반쪽짜리였습니다. 단일 리그로 정규시즌이 시작된 1989년 이후 두 번째 우승입니다.

    두산은 2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케이티와 홈 경기에서 9-2 역전승을 거두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최근 9연승으로 90승(46패1무) 고지를 밟으며 남은 7경기에 관계 없이 1위를 확정지었습니다. 2위 NC는 남은 14경기를 모두 이겨도 두산에 앞설 수 없습니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두산의 우승이 확정되자 축포가 잠실벌 밤 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였습니다. 김태형 감독 이하 선수들은 우승 플래카드를 들고 뜨거운 응원을 펼쳐준 1만9000여 명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21년 만의 낭보를 기다려온 팬들은 구장이 떠나갈 것 같은 환호로 화답했습니다. 박정원 구단주를 비롯해 김승영 사장 등 구단 고위 관계자들도 뿌듯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격려했습니다.

    한 시즌, 우승하기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던진 선수들의 경기 모습과 환희, 아쉬움의 표정들이 담긴 동영상이 전광판을 수놓았습니다. 가수 이적의 '같이 걸을까' 노래의 감성 짙은 선율이 배경으로 흐르면서 더욱 진한 감동이 더해졌습니다. 일부 팬들은 눈물을 흘렸고, 더 많은 팬들이 선수들이 일궈낸 명장면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라운드에 도열한 선수들은 감회에 젖은 얼굴로 자신들의 여정을 지켜봤습니다.

    이날 경기 후 우승 인터뷰 대상자는 4명이었습니다. 당연히 곰 군단을 이끈 김 감독이 나섰고, 그를 보필한 주장 김재호와 에이스이자 강력한 정규리그 MVP 후보 더스틴 니퍼트에 재치 만점의 입담을 자랑하는 좌완 유희관이 뒤를 이었습니다. 선수들 모두 올 시즌 두산의 질주를 이끈 공신들로 손색이 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라운드와 기자실에서 각각 방송과 신문 등 언론 인터뷰에서 감격의 소감을 밝혔습니다.

    ▲감독이 뽑은 MVP

    이들과는 별개로 더그아웃에서는 다른 선수의 조촐한 인터뷰도 진행됐습니다. 바로 올해 두산이 낳은 최고 히트작 김재환(28)이었습니다. 이날 경기 전 김 감독이 마음 속의 MVP로 꼽았던 만큼 말하자면 '숨은 MVP 인터뷰'였던 셈입니다.

    김재환의 2016년은 대단했습니다. 127경기에서 타율 3할3푼7리에 36홈런 119타점 104득점을 올렸습니다. 홈런 3위, 타점 4위, 득점 5위, 타율 10위.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김재환이었기에 더 값진 성적.

    역대 두산의 한 시즌 최다 득점과 토종 최다 홈런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메이저리그로 떠난 김현수(28 · 볼티모어)가 지난해 타율 3할2푼6리 28홈런 121타점 103득점을 기록했으니 김재환이 그 공백을 차고 넘치게 메운 셈입니다.

    '이렇게 쳐보는 건 어때?' 김태형 두산 감독(88번)은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의 MVP로 김재환을 꼽았다. 사진은 김 감독이 올 시즌 중 김재환에게 타격 지도를 하는 모습.(자료사진=두산)

     

    무엇보다 김재환의 활약은 의외였기에 더 의미가 컸습니다. 2008년 입단한 김재환은 지난해까지 군 복무를 뺀 통산 5시즌 동안 홈런이 불과 13개뿐이었습니다. 타점도 44개에 그쳤습니다. 대형 포수로 기대를 모았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백업 요원으로 대부분 뛰었습니다. 그랬던 김재환이 잭팟을 터뜨린 겁니다.

    김 감독이 마음 속의 MVP로 김재환을 꼽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김 감독은 "니퍼트(21승)나 장원준(15승) 등은 그동안 계속 잘해왔던 선수들이라 기대치가 있다"면서 "그러나 김재환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며 MVP 선정 배경을 밝혔습니다. (김 감독이 김재환과 함께 외야수 박건우나 내야수 오재일의 이름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이들 역시 김재환 못지 않은 깜짝 성장세와 활약을 보였습니다.)

    본인도 놀란 숫자들이었습니다. 우승 티셔츠를 입은 김재환은 "정말 이런 기록이 나올 줄은 나도 몰랐고, 모든 분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자신의 성과를 돌아봤습니다. 구단 역사를 바꾼 기록에 대해서는 "아직은 그게 와닿지가 않고 시즌이 끝나봐야 알 것 같다"고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끈질긴 5년 전 '도핑의 굴레'

    하지만 경이적인 환골탈태에 박수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곱지 않은, 아니 따가운 시선이 김재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의 성공 기사에 여지 없이 따라붙는 비난 댓글들입니다.

    지난 2011년 금지약물이 적발된 전력 때문입니다. 김재환은 당시 파나마에서 열리는 야구월드컵 대표로 선발됐는데 사전에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서 S1 동화작용 남성호르몬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에 김재환은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김재환의 인터넷 기사에는 약물 전력과 관련된 댓글들이 넘쳐납니다. '드디어 약빨이 터졌다' '약한 남자 김재환' '약재환, 약쟁이' 등 조롱하는 표현들이 난무합니다. 올 시즌 김재환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칭찬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올 시즌 전 스프링캠프에서 김재환(오른쪽)이 이우성과 함께 러닝을 하는 모습.(자료사진=두산)

     

    물론 이는 어느 두산 팬의 댓글처럼 김재환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입니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었든 간에 김재환의 몸 속에서는 금지약물이 투입된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함도 분명 있을 겁니다. 막 군대에서 제대한 20대 초반의 나이, 주변 지인의 추천에 자신도 모르게…. 그러나 거의 대부분 도핑 적발 선수들의 사유는 대동소이합니다. 순수해야 할 스포츠 선수의 피에 섞인 금지약물은 이유가 어쨌든 간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고 재기를 노리는 선수의 의지를 가혹하게 약물로만 매도하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거짓과 꼼수로 지속적인 금지약물 투입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다 들통이 난 메이저리그 몇몇 선수들이라면 여론과 제도의 철퇴가 마땅합니다. 그러나 한 순간의 잘못을 저질렀다가 징계를 받고 이를 씻기 위해 더욱 피땀을 흘리는 선수의 노력까지 무참하게 짓밟는 것은 다른 일일 겁니다.

    김재환도 자신에게 박힌 주홍글씨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약물 전력에 대한 비난에 대해 김재환은 말을 아꼈습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인 까닭입니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3, 4년 동안에는 없었는데 요즘 (비난) 댓글이 워낙 많아졌다"고 운을 뗐습니다.

    2011년 도핑 적발 뒤에도 김재환은 2012년부터 3시즌 동안 존재감이 미미했던 게 사실입니다. 2015년 48경기 153타수를 소화한 게 가장 많은 출전이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발군의 활약으로 위상이 커지면서 댓글도 기하급수적으로 는 겁니다.

    ▲"가족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김재환은 "올해 두산의 도핑테스트 때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다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한 점 약물 의혹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묻어나는 어조였습니다.

    워낙 빼어난 활약을 펼친 탓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일취월장한 기량을 보인 팀 선배 민병헌 역시 5번 이상 도핑테스트를 받았다고 합니다. 더욱이 KBO는 올해부터 도핑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 맡기면서 더욱 엄격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안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약물 꼬리표가 괴롭지만 극복해야 할 숙제입니다. 김재환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내가 잘 해서 실력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고 굳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고마워, 여보' 지난 2014년 12월 결혼한 김재환과 부인 정현정 씨의 웨딩 사진.(자료사진=두산)

     

    이 괴롭고도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가족입니다. 2014년 말 결혼한 김재환은 이제 막 첫 돌을 앞둔 쌍둥이 딸의 아빠입니다. 가장의 책임감은 도핑의 악몽을 이겨내고 최고 타자로 거듭나게 할 수 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김재환은 "올 시즌 타격의 거의 모든 부분을 바꿨는데 여태까지 해왔던 폼이나 기술을 버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그런 두려움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고 야구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꿨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가족을 생각하면서 그걸 바꾼 게, 두려움을 떨쳐냈다는 게 가장 컸다"고 말했습니다.

    가족, 특히 아내가 없었다면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김재환은 "집사람이 옆에서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줬다"면서 "잘한다고 기분 좋아하지 말고 지금부터 시작인데 집중해서 더 좋은 결과 내자, 이렇게 계속해서 마인트 컨트롤을 해줬다"고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극복해선지 정규리그 우승에 들뜨거나 다가올 한국시리즈도 떨리지 않습니다. 김재환은 "정규리그 우승이 정말 너무 말할 수 없이 기분 좋지만 중요한 경기가 남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는 이른 것 같다"고 스스로를 가라앉혔습니다.

    이어 차분하게 "나는 처음부터 잃을 게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다"면서 "그게 있었다면 이런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전으로 생애 처음으로 뛸 한국시리즈에 대해서도 "특별히 잘해야겠다는 생각없이 하던 대로 하자는 마음이고 떨리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는 김재환에게서 쌍둥이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이 읽혔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김재환이 22일 인터뷰를 마친 뒤 정규리그 우승 티셔츠를 입고 한국시리즈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잠실=노컷뉴스)

     

    p.s-김태형 감독은 22일 경기 전 1995년 정규리그 우승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당시 김 감독은 선수로서 OB 베어스의 우승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와 요즘 선수들의 달라진 문화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김 감독은 "그때만 해도 선수들이 경기 후 모여서 한 잔씩 하면서 팀 워크도 다졌다"면서 "그러나 요즘에는 선수들이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데 만약 1990년대였다면 왕따가 될 만큼 훈련을 많이 한다"며 웃었습니다. 90년대의 낭만과 함께 현재 선수들의 프로 의식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이어 김 감독은 "나도 하는 데까지 했지만 지금 선수들처럼 열심히는 아니었다"면서 "타율 2할2푼 치다가 갑자기 3할을 칠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짐짓 자조의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1990년 데뷔한 김 감독은 12시즌 통산 타율 2할3푼5리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90년대 얘기일 겁니다. 현재 KBO 리그는 김재환처럼 괄목상대하는 선수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오재일, 박건우를 비롯해 SK 정의윤, 최승준 등도 올해 두각을 나타냈고, 리그를 정복했던 박병호(미네소타)도 한때는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약물이 아니어도 선수들은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한때 금지약물 징계를 받았던 김재환이 그걸 속죄하며 실천해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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