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의사의 환호' 봉중근이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 대만과 경기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환호하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지난 23일 LG와 2년 15억 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은 좌완 봉중근(36). 100억 원 안팎의 대박이 터진 최근 FA 시장에서는 소소한 계약으로 분류된다. 특히 4년이 거의 기본인 요즘 추세에는 살짝 빗겨간 사례다.
그도 그럴 것이 봉중근의 나이는 이미 30대 후반. 투수라고 하지만 전성기를 지나친 나이가 걸림돌이었다. 여기에 올해 부상 등으로 19경기 1승 2홀드 평균자책점(ERA) 4.95의 성적 역시 장기 계약을 막았던 원인이었다. 더군다나 LG는 성공적인 세대 교체로 베테랑의 입지가 줄어든 상황이다.
하지만 다른 투수가 아닌 '봉열사' 봉중근이기에 아쉬움이 남는 계약이다. 소속팀 LG는 물론 국가대표로서도 헌신적인 활약을 펼쳤던 봉중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위해 봉사한 봉중근은 영예로운 별명을 얻었지만 FA 대박은 이루지 못했다.
봉중근은 200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 야구가 전 세계에 위상을 떨친 영광의 순간을 모두 함께 했다. 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에 힘을 보탰고, 2년 뒤 2008 베이징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포효했다.
'8년 전 베이징에서도 봉열사가' 봉중근(왼쪽)이 쿠바와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확정한 뒤 태극기를 들고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특히 1년 뒤 2회 WBC가 압권이었다. 봉중근은 간파당한 '일본 킬러' 김광현(28 · SK)을 대신해 중책을 맡았다. 예선과 본선 두 번의 한일전에 선발 등판한 봉중근은 각각 5⅓이닝 무실점, 1실점의 눈부신 투구로 2승을 따냈다. 2006년 4강을 넘어 준우승의 발판을 놨다.
일본 야구의 심장이라는 도쿄돔 예선 승부가 눈길을 끌었다. 봉중근은 일본의 정신적 지주 스즈키 이치로를 잇따라 날카로운 견제로 혼비백산 놀라게 만들어 국내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 새 일본 킬러로 거듭난 봉중근은 안중근 의사에 빗대 '봉의사' '봉열사'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이후 봉중근은 부상으로 2013년 WBC에서는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2010년 광저우와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나서 후배들과 함께 금메달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런 국제대회의 활약은 봉중근에게는 다소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전성기가 너무 짧았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2007년 LG에 입단한 봉중근은 2008, 09년 모두 11승을 거두며 팀 간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0년 10승(9패)이 마지막 두 자릿수 승수였다.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치른 이듬해 봉중근은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선발에서 마무리로 전환했다. 2012년 26세이브 ERA 1.18로 성공적인 클로저로 데뷔한 봉중근은 2013년 8승1패 38세이브 ERA 1.33의 놀라온 성적을 낸 뒤 2014년에도 2승4패 30세이브 ERA 2.90을 찍었다. 그러나 인천아시안게임 뒤 지난해 5승2패 15세이브 ERA 4.93으로 하향세로 돌아섰고, 올해 활약이 더 미미했다.
'추신수, 운대요' 봉중근(가운데)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시상식에서 추신수(오른쪽)가 눈물을 흘린다며 익살스런 포즈를 취한 모습. 왼쪽은 그에 동조하는 류현진.(자료사진)
모 구단 감독은 "WBC는 시즌 전에 열려 선수들이 몸을 일찍 만들어야 하는 데다 전력투구를 해야 하는 투수의 경우 부담이 더 크다"고 전제하면서 "사실 그 중에서도 봉중근은 조금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수술과 구속, 구위 저하 등도 이런 이유가 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봉중근은 2회 WBC 때 4경기(3경기 선발)에서 17⅔이닝을 소화했다.
이는 비단 봉중근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WBC와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나선 에이스급 투수들이 겪은 일이다. 국제대회 단골 손님인 류현진(29 · LA 다저스)은 어깨 수술로 거의 두 시즌을 개점휴업했고, 김광현 역시 수술을 받아 내년 시즌을 장담하기 어렵다. 윤석민(30 · KIA) 역시 여파가 있었다. 그나마 이들은 나이가 한창 때라 FA 대박을 냈지만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봉중근은 이런 혜택이 없었다.
물론 국제대회 출전은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만큼 국가대표급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나서야 할 의무다. 대회에 따라 병역 면제와 FA 자격 취득 일수 등 혜택도 주어진다. 봉중근,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도 병역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의 부름에 헌신한 데 따른 피해에 대한 보상은 온전치 못한 게 현실이다. 국제대회 출전에 대한 대가를 소속팀이 치르는 것은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이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국제대회 출전은 축구나 농구, 배구 등 다른 종목에서도 딜레마다. 그나마 축구는 해외 진출을 위한 쇼케이스라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다른 종목은 그런 이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소속팀에서의 성적과 국제대회 출전 사이에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에 대한 사각지대가 있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국제대회 출전이 적거나 일천한 선수들이 엄청난 FA 대박을 터뜨린 사례와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FA 계약 후 봉중근은 "LG에서 계속 야구를 할 수 있어 기쁘고 구단과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면서 "내년 시즌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소속팀의 로고든 태극마크든 가슴에 단 명예를 위해 헌신했던 선수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메울 합리적 보완책이 필요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