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10승' 두산 장원준이 17일 KIA와 홈 경기에서 와인드업을 하며 매섭게 포수 미트를 노려보고 있다. 이날 장원준은 역대 KBO 좌완 최초 8년 연속 10승을 거뒀다.(잠실=두산)
1회 징크스 등 기복이 심했던 유망주에서 꾸준함의 대명사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3번째 8년 연속 10승 이상으로 이를 입증했다. 두산 토종 좌완 에이스 장원준(32)이다.
장원준은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IA와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4탈삼진 7피안타 1볼넷 1실점 호투를 펼쳤다. 팀의 4-1 승리를 이끌며 시즌 10승째(7패)를 따냈다.
롯데 시절인 지난 2008년 이후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다. 2004년 데뷔한 이후 5년 만에 12승(10패)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낸 장원준은 이후 13승-12승-15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경찰 야구단에서 복무한 장원준은 2014년 10승으로 제대 신고를 한 뒤 두산으로 옮겨온 2015년 12승, 지난해 15승을 거뒀고 올해도 10승 고지를 밟았다.
이는 역대 KBO 3번째의 대기록이다. 해태(현 KIA)에서 뛰었던 이강철 현 두산 2군 감독의 10년 연속(1989∼1998년), 빙그레와 한화 등 독수리 에이스였던 정민철 야구 대표팀 코치의 8년 연속(1992∼1999년) 이후 18년 만에 수립된 성과다. 좌완 투수로는 역대 최초다.
롯데 시절 장원준의 투구 모습.(자료사진=롯데)
사실 장원준은 데뷔 초만 해도 미완의 대기였다. 양상문 당시 롯데 감독(현 LG)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꾸준히 선발 기회를 잡았으나 2004년 3승8패, 이듬해 5승6패에 머물렀다. 평균자책점(ERA)도 5점대였다. 기복이 심해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해서 별명도 장기복, 장롤코 등 부정적인 게 많았다.
그러나 장원준은 2006년 7승12패 ERA 3.61, 2007년 8승12패 ERA 4.67로 서서히 가능성을 드러냈다. 2008년 드디어 12승 10패 ERA 3.53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키더니 어느새 8년 연속 10승 이상이다.
그러는 동안 좌완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기도 했다. 2006년 류현진(현 LA 다저스)이 18승6패 1세이브 ERA 2.23, 탈삼진 204개 등으로 투수 3관왕과 함께 최초로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를 석권했다. 2008년에는 김광현(SK)이 2년차에 16승4패 ERA 2.39로 MVP에 올랐다. 김광현의 동기 양현종(KIA)도 2015년 ERA 1위(2.44)에 오르는 등 정상급 좌완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좌완 최초의 영예는 묵묵히, 또 꾸준히 매년 성적을 쌓아온 장원준의 몫이었다. 장원준은 '전설' 송진우 전 대표팀 코치도 이루지 못한 좌완 최초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여기에 지난달에는 송 코치에 이어 좌완으로는 2번째 11년 연속 100이닝 이상과 120승을 달성했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등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양준혁 위원은 후배 이승엽이 해외로 진출한 사이에도 KBO 리그를 지키며 꾸준한 활약을 펼쳐 통산 최다안타, 볼넷 등의 기록 보유자로 남아 있다.(자료사진=삼성)
이런 장원준에게는 KBO의 또 다른 전설 양준혁 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향기가 풍긴다. 양 위원은 현역 시절 이승엽(삼성)의 화려한 홈런 행진에 가렸지만 꾸준하게 KBO 리그에서 뛰면서 통산 타자 기록을 세웠다. 물론 홈런과 타점, 득점 등은 일본에서 복귀한 이승엽에 기록을 내줬지만 최다 안타(2318개), 볼넷(1389개) 기록 등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양 위원 역시 묵묵히 KBO 리그에서 한 우물을 팠기 때문에 세웠던 값진 기록들이다. 후배 이승엽이 2003년 이후 8년 동안 일본에서 뛰는 동안 양 위원은 국내 리그를 지키며 정상급 타자로 군림했다. 양 위원도 해외 진출 제의가 있었지만 KBO 리그에 남았다. 그 결과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기록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장원준도 마찬가지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고, 김광현과 양현종 역시 해외 리그 진출을 엿보는 동안 묵묵하고 꾸준하게 KBO 리그에서 활약해왔다. 물론 국가대표 차출 등의 여파로 후배들이 부상으로 주춤한 사이에도 장원준은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선발 투수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WBC와 프리미어12 등 국가대표로도 발탁돼 빅 게임 피처로서의 면모도 보인 장원준이다. 이런 장원준의 대기록은 해외파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국내에서 꾸준하게 한 우물을 파온 데 대한 보답이다.
17일 대기록 수립 뒤 장원준은 "선발 투수라면 10승을 채워야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기록을 이어서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장롤코 등 예전에는 안 좋은 별명도 많았는데 점점 팬들이 좋은 별명으로 불러준다"면서 "그 중에도 '장꾸준'이란 별명이 가장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장원준의 대기록 달성을 기념한 화면이 잠실구장 전광판에 뜬 모습.(잠실=두산)
겸손함은 장원준의 또 다른 덕목이다. 장원준은 "몸 관리를 도와주시는 트레이닝 코치님과 도움을 주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기록"이라며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데뷔 초기 후배들에 뒤졌던 평가가 이제는 역전된 것 같다는 말에도 손사래를 쳤다. 장원준은 "만약 류현진이 국내에 있었다면 먼저 기록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속 기록에 대한 뿌듯함과 욕심은 있다. 장원준은 이강철 감독의 기록에 대해 "매년 10승 이상을 목표로 한다"면서 "내년에 다시 10승을 거둬 9년 연속 기록을 하면 내후년에는 이강철 감독님 기록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KBO 리그 역대 다승 2위 기록도 넘본다. 장원준은 "사실 송진우 코치님의 역대 1위(210승)는 너무 멀고 정 코치님 기록(161승)까지는 경신해보고 싶다"고 웃었다. 이어 "개인 타이틀이 아직 없는데 할 수 있다면 ERA 1위를 해보고는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전설' 양준혁 위원의 향기가 솔솔 풍기는 꾸준함의 대명사 장원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