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_Too) 외침에 '위드유'(#With_You) 메아리가 더해져, 더불어 사는 세상을 앞당기는 연대의 함성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그 단초는 "우리 모두 같은 처지였다"는 공감에서 비롯됐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세상 모든 약자를 잇는 변혁의 물줄기로서 '미투'와 '위드유'의 가치를 전문가 인터뷰로 검증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위선적 '性문화'…권력의 민낯을 숨기다<계속>
지난 8일 충남도청에서 예정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의혹'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취소된 가운데, 한 취재기자의 휴대전화에 취소 안내 문자가 수신돼 있다. (홍성=CBS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겉으로는 굉장히 점잖은 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성(性) 문화가 있다. 밤과 낮이 다르고 공과 사의 영역이 다르다. 이때 이른바 '이중체계'라고 해서 성별마다 다른 성적 규범을 적용한다. 같은 성적 행동을 하더라도 성별에 따라 각기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여성계에서 오랫동안 비판해 온 한국 사회의 위선적인 성문화를 꼬집었다.
이 교수는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묵인해 왔던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며 "여성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외쳤으나, 우리 사회에서는 애써 외면해 오던 이러한 이야기들에 이제서야 귀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에서 성은 누군가에게는 무한한 접근권이 있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당하더라도 감춰야만 하고 말할 수조차 없는 환경이다. 그것이 바로 약자를 향한 성폭력을 용인해 온 성별 권력 관계다."
그는 "명백한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법적·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가해자 외에 동조자·묵인자·방관자로서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자의든 타의든 기여한 우리 역시 경중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정의한 시스템 안에서 이익을 얻은 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남성, 백인 중심 사회에서는 백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다. 이들은 직접적이거나 법적인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시스템에 가장 기여를 많이 하면서 혜택을 얻었기 때문에 보다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교수는 "지금 '미투' 운동과 관련해 가해자를 적절히 처벌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만큼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도 만들어진다"며 "그 다음에 우리 같은 사람들 역시 그 층위에 따라 각자 책임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개인의 일상이나 문화, 관념을 개선하는 데 노력해야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고 역설했다.
"젠더 관계는 기본적으로 권력 관계다. 특수한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권력형 성폭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성찰이 필연적으로 있어야만 한다."
이어 "그런 다음에 정부를 향해 이러한 부정의한 시스템을 바꾸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며 "물론 문단·연극계·영화계 등 각 집단별로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세심하게 들여다본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 뭉치는 약자들…"평등 세상 열어젖힐 '미투' 이끄는 동력"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페미니즘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그러니까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왔던 모든 것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준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론이다.
결국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변할 수는 없다. 아래에서부터 변화의 물결이 일지만, 거기에는 반발도 있고 저항도 있고 후퇴도 했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서서히 변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일시적인 후퇴는 겪더라도 전면적인 후퇴로 이어지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통해 위정자들의 사고 변화까지 이끌어내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성평등 실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 특히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고 인정하고 바꿀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개헌 논의에서 헌법상 '국민'을 '사람'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오잖나. 결국 법과 제도는 시민권을 지닌 자에 대한 보호다. 헌법에서 '사람'을 강조하려는 이유는 한국에 와 있는 장기 체류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지와 보호 체제도 함께 가져가겠다는 의지다. 이들에 대한 보호는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미투' 운동의 동력으로서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요소다."
이 교수는 "이른바 사각지대라는 정책 용어 안에 어떠한 사회적 타자들이 놓여 있는지를 촘촘하게 들여다보면서 진지하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미투' 운동은 이러한 사각지대까지 품고 가야만 한다"고 봤다.
"이미 승인된 시민이 아니라, 시민의 범주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 이 점에서 성소수자 문제 역시 중요하다. 그 안에서도 기본적으로 젠더 고정관념과 연결된 많은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성평등에 대한 인지 교육이 그들 안에서도 이뤄지고, 우리 사회 역시 그러한 성정체성을 인정해야만 관련 정책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정책이 안 나오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교수는 "독일의 경우 이른바 차별금지법 안에 성폭력을 방지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다문화 사회인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한 조직 안에 여러 인종, 성소수자 등이 함께하고 있다. '그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고민은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복합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는 "이는 결국 모든 사람들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성폭력을 막는 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이라며 "우리 역시 관련 법·제도 개선을 고민할 때 성은 물론 인종, 계급 등 포괄적인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투'를 논하다 ②] 편에서 계속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