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는 평평한데...' 잠실구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원정팀의 열악한 라커룸 공간이 문제로 지적돼왔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자료사진=윤창원 기자)
잠실야구장 원정팀 라커룸이 뜨거운 감자다. 홈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간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올해 한반도를 강타한 폭염에 원정팀의 불만이 폭발했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지난 29일 두산과 잠실 원정을 앞두고 취재진에게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전날 비로 경기가 1시간여 늦게 시작됐는데 선수들이 습도까지 높아 푹푹 찌는 날씨에 대기하느라 지쳤다는 것이다.
두산 선수들은 3루 쪽 널찍한 라커룸에서 쾌적하게 기다릴 수 있었지만 한화 선수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좁은 라커룸 공간에 복도나 더그아웃에서 대기해야 했고, 외인 투수 데이비드 헤일도 이 과정에서 고열이 나서 29일 선발 등판이 취소됐다는 설명이었다.
원정팀을 위해 충분한 휴식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화는 28일 6 대 13으로 패한 데 이어 29일에도 1 대 3으로 졌다. 헤일의 대체 선발 김범수가 6이닝 3실점 호투했지만 타선이 상대 조시 린드블럼에 8회까지 1실점으로 막혔다.
'기울어진 라커룸' 문제는 잠실구장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상황 때문이다.
잠실은 LG와 두산이 함께 홈으로 쓴다. 1루 쪽에는 두산의 라커룸이, 3루 쪽에는 LG 라커룸이 있다. 실내 훈련도 소화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다.
다만 원정팀을 위한 공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개보수 공사를 통해 라커룸이 마련됐지만 식사를 위한 케이터링 서비스 등으로 선수들이 쉬기 어렵다. 때문에 3루 더그아웃 뒤쪽 복도에는 선수들의 장비와 짐이 항상 널브러져 있다.
'10년 전에도' 잠실구장에 오는 원정팀은 라커룸이 비좁아 3루 더그아웃 뒤쪽 복도에 짐을 놓기 일쑤다. 사진은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오른쪽)이 일본 야쿠르트에서 뛰던 임창용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악수하는 둘의 손 뒤쪽으로 삼성 선수들의 짐이 보인다.(자료사진=노컷뉴스)
더욱이 3루 쪽 더그아웃은 오후가 되면 햇빛을 그대로 받는다. 더운 여름에 더욱 더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3루 쪽 라커룸을 쓰는 LG도 홈 경기 때는 1루 쪽 더그아웃을 사용한다.
대개 원정팀 라커룸은 홈팀에 비해 시설이 살짝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도 고척스카이돔이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인천 SK 행복드림 구장 등 신축구장들은 원정 라커룸도 호평을 받는다. 부산 사직구장도 리모델링으로 최신식 시설을 구비했다. 다른 구장도 최소한 홈과 원정 라커룸이 엇비슷한 수준은 된다. 그러나 잠실만 차이가 크다.
두산, LG 구단도 난감하다. 두 구단이 구장 시설을 책임지고 관리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잠실구장은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관리 주체다. 두 구단 관계자들은 "우리 마음대로 시설을 개보수할 수도 없을 뿐더러 현실적인 공간도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리그 규정과 규약에는 라커룸과 관련된 조항이 따로 없다. 규정 제 10조에 "홈 구단은 KBO 규약 제 136조에 의거 심판위원 및 원정 구단에 대해 충분한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KBO 관계자는 "이 규정을 넓게 본다면 폭염 피해도 생각을 해볼 수 있겠지만 부상 등 명백한 안전 보장 사안은 아니라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잠실구장 경기 때 두산이나 LG 등 원정을 나서는 팀이 라커룸을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28일 두산-한화전처럼 특수한 경우에 한해서다.
하지만 이 부분도 쉽지는 않다. 두 구단 선수들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고, 보안 상으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까닭이다.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 소재도 가려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두 구단 관계자들이 "어려운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결국 한정된 여건에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잠실 원정팀의 괴로움이다. 아니면 확실치도 않은 신축구장이 건립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과연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