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내일(13일)이 사법 70주년 기념일이라는데, 요즘 법원을 보면 신뢰라는 말보다는 '끼리끼리'란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사냥꾼이 나타나자 꿩이 무서운 나머지 머리만 수풀에 쑥 처박았단 얘기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요즘 법원이 딱 그 꿩의 모습입니다. 눈 가리고 아옹하고는 스스로는 잘했다고 안위하는 꼴이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자행됐던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지금 검찰 수사가 한창입니다.
수사가 벌써 석달을 넘기고 있는데, 검찰은 내년까지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피로감이 물씬 밀려옵니다.
그런데 이 피로감은 법원이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보통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90%가 넘습니다. 이렇게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높은 이유는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 등이 수사의 단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수사의 물꼬를 튼다는 차원입니다.
그런데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이상합니다.
최근에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법원에서 3차례나 기각됐습니다.
(사진=자료사진)
검찰은 유 전 판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양승태사법부 시절 대법원 재판 자료 등을 발견했지만, 영장 기각으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3번이나 영장이 기각되는 사이 유 전 판사는 관련 자료 등을 모두 폐기했습니다. 문서는 파쇄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가위로 잘게 잘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3번째 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유 전 판사하고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1년동안 함께 근무한 사이였습니다.
영장 기각 사유를 보니 "유 전 판사의 대법원 재판 자료 반출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수사는 시작도 못했는데, 판사가 이미 수사 결과까지 예단한 겁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특별재판부를 꾸리자는 목소리가 자연스레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게 뻔하고, 아무도 그들의 재판에 수긍하지 않으려 들 겁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3번에 걸쳐 실시한 자체 조사에도 여론이 냉담하자 '수사협조'라는 절체절명의 카드를 꺼내 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모습을 보면 수사 협조라기보다는 차라리 수사 방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합니다.
사법 70주년 기념일을 미리 예상해 볼까요? "지금이 사법부 최대 위기이고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성한다는 말을 수백번 되뇌이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또 다시 대법원이 여론을 읽지 못한다면, 그때는 등 돌린 국민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들의 손가락질이 계속되기 전에 어서 수풀에서 머리를 빼내 현실을 직시하는 법원이 돼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