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 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재판관들이 입정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헌법재판소가 모든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현행 형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서 일선 법원에 계류 중인 낙태죄 사건들에 대한 판단도 주목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노정희 주심)는 업무상촉탁낙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부인과 의사 A 씨 사건을 심리중이다.
A 씨는 2013년 임신 5주 차였던 B 씨의 요청으로 태아를 낙태한 혐의로 하급심에서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이 선고유예됐다.
재판부는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하는 낙태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로 판단했지만 바로 형을 선고하지는 않았다.
선고유예란 범죄의 정도가 비교적 경미한 경우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특정한 사고 없이 유예기간이 지나면 면소로 간주하는 것이다.
전국의 1심 재판부에도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자기낙태죄·의사낙태죄로 접수된 사건 96건 중 6건이 계류 중이다.
그동안 헌재 결정을 고려하며 낙태죄 사건의 재판 진행을 보류해온 재판부는 이제 사건처리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만큼 재판부에선 입법기관이 법을 개정할 때까지 재판을 보류하거나, 헌재 결정에 따라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
반면 재판부가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단순 위헌과 달리 헌법불합치 결정은 재판에 바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판단할 경우, 현행법에 따라 엄격한 법 집행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재판부가 현행 낙태죄를 그대로 적용할 가능성은 작을 거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일정 기간을 유예한다고 하더라도 헌재가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고, 결정 과정에서 이미 낙태죄 조항이 사문화됐다고 '못박은' 상태기 때문이다.
앞서 헌재는 지난 11일 결정을 내리면서 "낙태죄가 도입됐지만 실제 처벌하는 사례가 적어 형벌조항이 사문화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대법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96건의 낙태죄 사건 중 무죄나 집행유예·선고유예로 바로 처벌하지 않은 건수가 73건으로 76%에 달한다. 바로 처벌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이다.
2017년 업무상촉탁낙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태아의 생명권도 중요하나 낙태죄를 엄중히 처벌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감안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헌재는 '태아가 모체와 분리되는 시기'로 임신 22주를 제시했다. 여기에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시기를 고려해 '결정가능기간'이 정해진다.
공을 넘겨받은 입법기관은 22주의 기간 안에 구체적인 결정가능기간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결정가능기간에 따라 판결을 내리면 하급심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선고를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