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 감독. (사진=대한배구협회 제공)
김호철 감독을 향한 대한배구협회의 징계는 사실상 '꼬리 자르기'에 불과했다. 징계에 앞서 OK저축은행과의 협상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축하한다"는 말까지 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구계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배구협회는 사실상 김호철 감독이 OK저축은행으로 가는 것을 받아들인 상태였고 한 고위 관계자는 "좋은 기회니까 가야 하지 않겠나"라는 조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배구협회는 김호철 감독이 오한남 회장과 면담을 통해 대표팀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려의 시선이 적잖던 외부와 달리 배구협회는 김호철 감독의 OK저축은행 부임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배구협회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김호철 감독이 협회 예산 부족으로 대표팀이 챌린지컵에 나설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자 직접 스폰서 구하기에 나섰고 OK저축은행에 지원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태로 이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배구협회는 김호철 감독이 먼저 OK저축은행에 접촉한 이유로 여론이 나빠지자 징계 절차에 돌입했고 결국 지난 19일 긴급하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열리며 1년 자격정지 중징계를 내렸다.
당시 스포츠공정위는 "김호철 감독의 프로구단 이직 논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한 끝에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 제25조 제1항 제5호 '체육인으로서의 품위를 심히 훼손하는 경우'를 적용해 1년 자격정지(중징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징계는 결국 '꼬리 자르기'에 불과했다. 심지어 계약서에도 현재 김호철 감독은 이직하는 데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우선 김호철 감독은 2017년 4월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고 2018년 3월 전임감독이 됐다. 배구협회가 전임감독 체재를 도입하면서 계약도 달라졌다. 특히 김호철 감독의 계약은 흔히 볼 수 없는 단계로 이뤄져 있었다.
두 단계로 나뉜 계약 기간은 1단계 임기는 2018년 3월 1일부로 시작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까지다. 1단계에서 재신임을 받아야 2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계약이다. 그리고 김호철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재신임을 받는 데 성공했다.
(사진=대한배구협회 제공)
2단계는 임기가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로 되어 있지만 2020년 도쿄올림픽 종료 이후 중간평가를 통해 재신임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계약서에 명시된 2022년이 아닌 더 일찍 대표팀을 떠나야 하는 이상한 계약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이직에 관한 부분이다. 김호철 감독의 계약서에는 '대표팀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계약 기간 동안 어떠한 형태의 겸직과 이직을 금한다'라고 되어있다. 이 조항만 본다면 절대 이직 활동을 펼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2단계 계약이 실행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앞선 조항 뒤에는 '단 2단계 계약 기간부터 이직 시에는 이직 일까지 해당년도에 지급받은 급여의 50%를 위약금으로 협회에 납부해야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를 해석한다면 사실상 이적 금지는 1단계 계약에서 중요한 조항이다. 그리고 2단계로 계약이 넘어가고 위약금만 낸다면 이적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조항을 깨고 이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김호철 감독은 이미 지난해부터 2단계 계약이 실행된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호철 감독이 대표팀을 떠나 프로팀으로 이적한다는 비난을 피하긴 어렵다.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분명 본인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김호철 감독 역시 실망감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배구협회는 OK저축은행과 협상했다는 사실만으로 징계를 내렸다. 계약서상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김호철 감독이 먼저 OK저축은행에 연락했다는 것을 주요 쟁점으로 삼았다.
배구협회 대다수의 인원이 김호철 감독의 OK저축은행 부임이 가까워진 것을 축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나빠지자 급하게 징계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사실상 대표팀 사령탑 자리를 잃게 된 김호철 감독. 모든 것을 알고도 묵인하며 여론 눈치를 살핀 배구협회. 단순 '꼬리 자르기' 징계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