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전경.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외교부가 잇단 구설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미대사관에 근무하는 현직 외교관이 야당 의원에게 한미 정상간의 통화 내용을 유출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다.
최근 들어 외교부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문 보도자료에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발틱' 국가를 '발칸' 국가라고 잘못 기재하면서 해당 국가로부터 항의를 받았고, 차관급 회담인 한·스페인 전략대화에서 구겨진 태극기를 내걸어 또다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고의로 벌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일들이 겹쳐 일어나면서 외교부 당국자들의 세심한 업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외교부는 '쇄신'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던 와중 벌어진 이번 유출 사건은 앞선 일련의 사건처럼 '단순 실수'나 '해프닝'로 보기에는 그 심각성의 차원이 다르다.
이번 사안은 현직 외교관이 주미 대사만 볼 수 있는 '3급 기밀'로 구분된 정보를 같은 고등학교 출신 지인인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한 중차대한 사건이다.
자유한국당은 일단 감싸기에 나섰지만 당 내부에서도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만큼 국익에 미치는 파장은 크다.
'보수 외교통'으로 꼽히는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도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강 의원의 한미 정상 통화내용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외교통일위원장도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이례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외교부도 기밀의 관리와 열람 등 시스템과 기강해이, 유출 방지 시스템의 부재 등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그렇게 유출된 정보가 국익보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됐다는 목소리가 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주미대사관에 근무하는 A씨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실 보좌관을 만나기 위해 접촉했다가 거절당한 사실 역시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A씨 뿐 아니라 주미 대사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한미 정상 통화내용을 열람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미국 정부 역시 이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외교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감사에 나서는 등 후속 대책에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외교부 내의 '자주파 대 동맹파', '진보 대 보수' 성향 싸움이 불거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번 역시 외교부 내 대표적인 '동맹파'로 꼽혀온 북미 라인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부 내에서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부 움직임과 정부의 외교정책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직원이 있을 수 있다"며 "이번 역시 국익보다는 그러한 측면이 부각되는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외교 소식통은 "이번 사안은 기본적으로 고교 선후배 간 친분이 악용된 개인적 일탈"이라면서도 "하지만 주요 포스트인 주미 대사관에서 이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에 대해 깊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며 반성의 목소리를 주문했다.
외교부는 현재 미국 현지 등에서 A씨 등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할 뿐 극도로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대북 외교 등 여러모로 우리 외교 안보 정책에 중요한 시점이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번 사건 유출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A씨에 대한 엄중한 대응을 예고했다. 다만 이에 그칠 것이 아니라 유출 사건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구조적인 허점은 없었는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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