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연합뉴스)
북한이 청와대를 겨냥해 원색적인 발언을 쏟아냈지만, 청와대는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 대한 원론적인 경고 외에는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이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미연합훈련이 끝난 뒤 북미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협상에 성과가 있을 때까지 필요한 만큼 인내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北, 靑 향한 노골적 비난에도 트럼프에 "협상 시작하자"북한은 11일 외무성 권정근 미국담당국장 명의의 담화문을 통해 "바보는 클수록 더 큰 바보가 된다고 하였는데 바로 남조선 당국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정부가 '위력시위사격'의 사거리도 알아내지 못해 '만 사람의 웃음거리가 됐다'거나 된 "새벽잠까지 설쳐대며 허우적거리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라고 조롱했다. 또 "청와대의 이러한 작태가 우리 눈에는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에 "좋은 기류가 생겨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 해도 철저히 이러한 대화는 조미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통미봉남' 기조를 내비치기도 했다. 북한이 노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으면서 우리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고 자존심을 긁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공식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이유는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교환에서 대화 재개 기류가 드러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한미연합훈련이 끝나는 대로 협상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한 것에 대해 작은 사과를 보냈고, 훈련이 끝나면 중단될 것이라고 했다"며 "머지않은 미래에 김 위원장을 만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김 위원장의 의중은 연이은 발사체가 "한미연합훈련에 대응한 무력시위"라는 우리 정부의 판단과 일맥상통한다. 또 김 위원장은 도발의 명분이 사라지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16일 사이 5번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라는 엄중한 안보 상황도 가벼이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는 북한의 비난에 즉각 반응하기도, 북미 대화 움직임에 환영의 뜻을 내비치기도 모두 조심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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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비난 감수하는 문 대통령을 협상 지렛대로청와대가 북한의 비난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는 이유는 한반도 평화 앞에서는 정치적 손해도 감수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비핵화 협상은 기본적으로 북미간에 풀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 등 수차례 언급했던 이야기로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이면서도 촉진자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지난 6월말 남북미 정상의 역사적 판문점 회동 당시에도 문 대통령은 철저히 조연에 머물렀다. 사상 최초 남북미 정상회담의 그림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문 대통령은 뒤로 물러나 북미 정상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북한이 연달아 발사체를 발사하는 가운데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남북의 '평화경제'를 언급해 야당의 지탄을 받았는데, 이 역시 "담대한 목표와 역사적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평소 지론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문제는 북한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향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번 훈련이 한미연합훈련이며,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최첨단 전투기를 도입하려 한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미국이 아닌 우리를 향해서만 비난을 보내고 있다. 이는 표면적인 비난의 대상은 남한이지만, 결국 미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립외교원 민정훈 교수는 "북한이 다가오는 북미 협상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존재감을 드러내며 군사훈련 등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주된 책임을 대화 상대인 미국에게 돌릴 수 없으니 우리에게 찾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협상이 위기에 봉착했을 경우 언제든 나서 줄 수 있는 '안전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대화 재개를 기다리는 우리도 일정 부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마저 "나도 한미연합 훈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북한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탐탁지는 않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향한 큰 그림 앞에서 '참으며 가겠다'는 청와대의 기류는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어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면서도 "정부는 북미 실무협상이 하루 속히 재개되기를 촉구해왔다"며 대화 기류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