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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뒤끝작렬] 지소미아는 과연 패착이었나

    현찰 주고 어음 받은 셈? 부실어음 판정되면 즉시 사용정지
    강제징용-수출규제 연계? 연관성 부인했던 과거 발언이 발목
    ‘워싱턴 파괴력’에 굴복? 日 막판 변화가 더 합리적 추론
    美 지소미아 집착 확인했지만 애초부터 피해갈 수 없는 길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에 따른 한일 간 승패 판정은 원칙적으로 아직 이르다.

    우리 정부를 100% 신뢰할 수 없다손 쳐도 일본 주장을 그대로 믿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다.

    지소미아 (이미지=연합뉴스)

     

    맹목적 애국심도 문제지만 근거 없는 열패감은 더 큰 해악이다. 일본이 이런 식으로 우리 내부를 교란시킨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지소미아 종료 유예는 시한폭탄의 초침을 잠시 멈춰 세운 것일 뿐 본질은 변함 없다.

    혹자는 현찰 주고 어음 받은 밑진 거래라고 주장한다. 지소미아는 연장됐지만 수출규제 해제는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럴 듯한 비유지만 잘못됐다. 현금이 간 것은 맞지만 조건이 달렸다. 어음이 부실어음으로 확인되는 순간 현금도 즉시 사용 정지된다. 부실어음을 내민 일본은 ‘사기죄’가 추가된다.

    물론 일본이 수출규제를 순순히 풀어줄 리 만무하다.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과 수출규제의 연계전략을 쓸 게 뻔하다.

    수출규제 해제가 쉽지 않음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 수 앞도 못 읽고 덜컥 현찰을 내준 결정이라 비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가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대항(보복) 조치’가 아니라 안보상의 이유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정치적 동기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소송에 대비한 것인데 스스로 말의 족쇄를 채워둔 셈이다. 이제 와서 말을 바꿀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일본이 결코 유리한 구조는 아니다.

    그럼에도 전세가 이미 기운 듯한 분위기가 내리 누르는 건 왜일까? 미국 때문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우리는 지소미아에 대한 미국의 강한 집착을 확인했다. 미국은 조건부 연장 결정을 ‘갱신’(renew)으로 기정사실화하며 더 이상의 분란은 안 된다는 경고도 남겼다. 설사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지소미아 종료를 결단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아무 실익 없이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만 키운 꼴이 됐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가려들을 필요가 있다. 미국이 압박을 가한 것은 맞지만 일본 측 주장처럼 ‘워싱턴의 엄청난 파괴력’으로 굴복시켰다고까지 볼 근거는 없다. 시쳇말로 너무 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알려진 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소미아 종료 당일 한 반도체 소재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강조했다.

    만약 미국이 ‘엄청난’ 압박을 가한 게 사실이라면, 그 시점은 문 대통령의 준공식 참석 이후 반나절 동안으로 봐야 한다. 미국은 한밤중이었다. 자연스러운 설명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의 막판 태도 변화를 급반전 이유로 보는 게 더 합리적 추론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미국이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고 우리 정부가 곤경에 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피해갈 수 없는 길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왜 밀실처리 하려 했는지, 박근혜 정부는 왜 탄핵 직전 졸속처리했는지, 미국은 왜 그리 집착하는지, 지소미아의 실체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너무 일찍 비관주의,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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