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조국 가족 인권침해 청원'을 두고 청와대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첩한 공문을 폐기해달라고 요청한 행위에 대해 명백한 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권위에 송부된 모든 공문은 일정기간 동안 폐기할 수 없는 국가기록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독립기관인 인권위에 공문 폐기라는 범법 행위를 구두와 문서로 총 2차례 요구한 셈이어서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 현행법상 최소 1년 보존해야…어기면 최대 징역 7년
22일 국가기록원과 인권위 등에 따르면 국가기록원 소관 기록물은 최소 1년간 보존하는 게 원칙이다. 보존 기간 이전에 기록물을 폐기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해당 보존 기간이 끝난 기록물이라도 모두 폐기되는 것은 아니다. 기록물을 생산한 부서의 의견을 묻고(의견조회), 기록물 관리 전문 인력이 직접 폐기 가능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 이후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까지 거쳐야 기록물 원본을 폐기할 수 있다.
이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43조 등에 의한 것이다. 인권위와 관련한 모든 공공기록물은 국가기록원 소관으로 '국가 공공기록물'에 해당한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청와대가 인권위에 보낸 착오 공문 역시 최소 보존 기간이 설정 돼 있을 것"이라면서도 "어쨌든 최소(보존 기간)가 1년이다. 중요한 공문은 경우에 따라 영구보존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9일 노영민 비서실장 명의로 인권위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권침해' 청원에 대해 이첩 공문을 보냈다. 이후 청와대는 당일 오후 인권위에 전화를 걸어 해당 공문이 착오라면서 폐기를 요청했다.
이에 인권위가 "구두로는 민원 접수가 불가하니 요구사항이 있으면 공문을 보내라"고 원칙적으로 답했고, 청와대는 나흘 뒤인 13일 폐기 요청 공문을 재차 보냈다. 청와대가 총 2차례에 걸쳐 공문 폐기라는 '범법 행위'를 하도록 인권위에 요청한 것이다.
실제 청와대도 인권위에 공문 폐기 요청을 한 것을 공공연히 인정한 상태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인권위에 확정되지 않은 (청와대) 공문이 실수로 갔고, 그래서 그 공문을 폐기 처리해 달라고 인권위에 요청을 했다"며 "인권위에서 '폐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달라'해서 폐기 요청 공문을 보낸 게 스토리의 전부"라고 말했다.
다른 기관도 아닌 청와대가 인권위 직원에게 법에 저촉되는 '공문 폐기'를 요구한 것은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인권법 전문 변호사는 "민원이나 면접 서류, 하다 못 해 개인정보도 폐기 기한이 존재한다"며 "인권위의 공문서는 당연히 보관 기간이 있다. 문서 보관 규정이 있는데도 (인권위에) 폐기하라는 것은 월권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오류를 시인하는 듯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말했다.
◇ 조국 본인, 인권 침해 조사여부에 응답할까?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한편, 애초 청와대 청원을 제기했던 은우근 광주대 교수는 이번 사안이 논란이 되자, 지난 17일 인권위에 정식으로 실명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위는 해당 사안에 대한 조사 착수를 검토 중이다.
인권위의 조사 여부 결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조국 전 장관 본인의 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침해 사안을 조사하려면 침해 당사자 즉, 피해자의 조사 동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최근 조 전 장관 측을 상대로 조사 진행에 동의하는 지를 문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의 의사가 확인돼 인권위가 사건 조사를 결정하면 검찰·경찰·군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침해구제 1소위원회'로 사건이 배정된다. 현재 1소위원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 몫으로 임명된 박찬운 상임위원(57)이지만 박 위원은 '사건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회피 의사를 밝힌 상태이다.
박 위원은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조 전 장관을 옹호하며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게시글을 다수 올려, 형평성 논란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점을 고려해 회피 신청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최근 자신의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했다.